1달러 당 1500원을 앞둔 고환율 기조 속에 한국을 찾는 해외 관광객이 더 늘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내수 시장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유통업계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왕성한 소비를 버팀목 삼아 실적 회복을 노리는 분위기다.
20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월부터 11월까지 1741만827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509만8766명) 대비 15.4% 늘어난 수치로, 이미 2024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 1637만명을 넘어섰다. 12월 방한 관광객까지 더해지면 2019년(1750만명)을 넘어 역대 최대 관광객 수를 경신할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9월 29일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를 시행한 후 중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 지난해 10월과 11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각각 47만2477명, 37만7866명이다. 전년 동기대비 각각 20.5%, 26.9% 늘었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최근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만큼 한국 여행 수요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엔저(엔화가치 하락)로 일본 여행 수요가 늘었던 것처럼, 원화 약세도 외국인들이 다른 동아시아 여행지와 비교해 한국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대비 원화값은 주간 거래(오후 3시 30분)기준 전거래일보다 4.4원 하락한(환율은 상승) 1478.1원으로 마감했다.
가장 기대가 큰 건 백화점 업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소매 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 중 백화점 RBSI 전망치는 112를 기록했다. RBSI는 유통기업의 경기 판단과 전망을 수치화한 것으로, 기준치(100)를 넘기면 유통업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온라인(이커머스)·수퍼마켓·편의점·대형마트 등 다른 유통업이 모두 기준치를 밑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3분기 실적 반등에 성공한 백화점 업계는 K뷰티와 명품 판매를 앞세워 4분기 실적 확대를 노리고 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외국인 고객 대상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33.1%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의 주요 점포인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서울 매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3.3%에서 지난해 20% 수준으로 크게 늘어났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K패션 브랜드와 K팝 아이돌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 고객들이 팝업스토어를 체험하기 위해 많이 방문한다”며 “외국인 고객이 더 늘 것으로 예상해 올해부터는 주요 점포에 ‘글로벌 투어 서포트’를 공식 론칭하고 캐리어 무료 보관, 통역 서비스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본점도 지난해 외국인 매출이 전년 대비 40% 늘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젊은 세대를 겨냥해 기획한 K패션 브랜드 전문관 ‘키네틱 그라운드’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70%가 외국인 고객에서 나왔을 정도로 인기였다”고 말했다.
대형마트도 외국인 고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를 찾은 외국인 고객은 전년보다 23% 늘었고,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 규모도 30% 증가했다. 이마트도 지난해 외국인 매출 규모가 전년 대비 15% 늘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롯데마트를 찾은 중국인 고객은 전월 대비 14%, 대만 고객은 10% 늘었다”며 “이달 중 대만 라인페이와 협업 행사를 진행하고, 다음 달에는 춘절을 대비한 중국인 대상 프로모션을 열 것”이라고 말했다.
면세점은 아직 회복 조짐이 뚜렷하지 않지만,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제도가 고객 증가의 마중물이 돼 주길 기대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에 따르면 지난해 10~12월 명동 본점을 찾은 중국인 단체 입장객은 전년 동기대비 50% 늘었고, 매출도 30% 증가했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도 같은 기간 중국인 개별자유여행객(FIT) 구매 고객수는 22%, 매출은 30% 늘었다.
면세점 관계자는 “지난해 말 불거진 중국과 일본 갈등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 국내 면세업계가 반사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