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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현의 사부곡...영원한 나의 ‘백’…아빠의 ‘백’ 그립다

중앙일보

2026.01.20 07:01 2026.01.2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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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행복한 모습으로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부친 배원용씨(오른쪽)와 배소현. 딸은 2019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사진 조원범 작가]
골프 선수 배소현(33)은 초등학생 때 태권도를 했다. 운동신경이 좋았지만 늘 2등에 머물렀다. 우승을 놓칠 때마다 분하고 서러워 울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빠는 오히려 “괜찮다”며 싱글벙글이었다. 아빠가 아쉬워하지 않는 게 더 속상했다.

“알고 보니 태권도는 골프를 시키기 위한 체력 훈련이었어요. 우승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딸의 승부욕을 확인한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셨을 것 같아요.”

지난 19일 포르투갈 알가르브의 모가도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배소현은 2019년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배원용씨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하게 꺼내놨다.

배원용씨는 대학 골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실력자다. 그러나 프로가 되지는 않았다. 키가 크지 않아 한계가 있을 거라는 판단에 따라 아마추어에 남아 지도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후 대한골프협회에서 국가대표 상비군 코치를 지내며 김미현, 남기협(박인비 남편) 등을 가르쳤다. 골프연습장을 운영하던 그는 못다 이룬 자신의 꿈을 딸에게 강요하는 대신 ‘운동은 뭐든 다 해보라’며 묵묵히 지켜봐 줬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 배소현은 아버지 기대대로 골프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진 배소현 인스타그램]
아버지는 딸을 주니어 대회에 내보내지 않고 연습만 시켰다. 놀랍게도 프로테스트가 배소현의 첫 대회 출전이었다. ‘모의고사’ 한 번 없이 곧바로 ‘대입 수능’을 치른 셈이다.

대회에 처음 나가니 모르는 게 많았다. “아빠가 스코어 카드 적는 방법 등을 가르쳐줬지만 완벽하게 배운 건 아니잖아요. 티잉그라운드에서 생각해보니 누가 먼저 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치는 순서도 안 알려준 아빠가 원망스럽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캐디분은 제가 긴장한 줄 알고 자꾸만 긴장을 풀어주려 하셨죠.”

또 한 번 놀랍게도 배소현은 그 수능에 단번에 합격했다. 아버지가 무모한 도전을 시킨 이유는 어려서부터 대회 스트레스에 시달리면 골프가 지겨워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저는 지금도 투어 생활이 전혀 지겹지 않아요. 골프가 여전히 너무 재밌어요. 그게 정말 감사해요. 제가 또래들과 실력 차가 나면 좌절할까 봐 배려하신 마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을 거고요. 당시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후회하진 않아요.”

골프를 시작하자 자상하던 아빠가 확 달라졌다. “평생 ‘우리 예쁜 딸’이라 부르셨는데, 갑자기 저한테 엄해지신 거예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아 원망도 쌓였지만, 그때 잡힌 삶의 기준들이 지금의 저를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이시우 코치 문하에서 박현경과 한솥밥을 먹는 배소현은 아버지의 백을 메고 우승하는 후배의 모습이 부럽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있는 배소현. 성호준 기자
“캐디백을 메준 아버지 옆에서 우승한 현경이가 참 예쁘고 최고의 효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아버지가 2부 투어에서 저를 위해 5년 넘게 백을 메주셨을 때 좀 더 잘 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했거든요. 그때 아버지가 하셨던 야속한 말들이 돌아보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맞아요. 그땐 제가 너무 여리고 약해서 모질게 들렸을 뿐이죠. 지금의 저와 그때의 아버지가 만났다면 정말 잘 맞았을 거에요.”

고마운 것도 있다. “골프 선수를 하면서 아빠랑 시간을 많이 가졌죠. 이렇게 짧게 끝날 줄 몰랐지만 농도 깊은 시간을 아빠와 함께 한 점은 감사해요.”

2018년 핀크스 골프장에서 갤러리로 함께 한 아픈 아버지 앞에서 울며 쳤던 기억, 수원 CC 연습장 화장실에서 아버지의 진단 결과를 듣고 오열했던 기억들이 코스 곳곳에 박혀 있다.

배소현은 “연습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아버지가 해주셨던 얘기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여전히 딸의 스윙 하나하나에 함께 하는 듯했다.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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