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공지능(AI) 산업은 산업구조 전반을 재편하는 단계로 진입했다. 생성형 AI와 초거대 언어 모델의 확산,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이 맞물리며 반도체 산업은 수퍼사이클 초입에 서 있다. 이번 사이클의 특징은 수요가 AI 가속기와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수요를 견인하는 주체는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다. AI 데이터센터는 수만 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또는 텐서처리장치(TPU)와 이를 뒷받침하는 HBM, 대규모 D램과 낸드플래시로 구성된다. 올해 엔비디아의 GPU 주문량은 200만 장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파운드리와 HBM의 실제 공급은 30~40%에 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데이터센터 확장 병목이 메모리 생산능력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서 K-메모리 산업의 위상은 분명하다. UBS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로만 각각 446조원, 189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문제는 생산 인프라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청주사업장에서 HBM용 D램을 월 4만 장 증산하겠다고 밝혔으나, 내년 2분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적기에 가동되지 못할 경우 공급 병목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 역시 내년 평택 5공장이 조기에 가동되지 않으면 HBM 공급 부족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K-반도체 산업 전체의 성장경로를 좌우할 구조적 리스크다.
반도체 산업은 ‘타이밍 비즈니스’다. 2~3년 후의 수요를 예측해 선제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재정을 확보해 수요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맞춰 공장을 가동해야 한다. 기술 개발과 투자 재원 확보는 기업의 몫이지만, 생산공장의 적기 가동은 정부의 인프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대만·일본 등 주요 경쟁국은 부지 선정부터 정부가 전력·용수·폐수처리 등 핵심 인프라를 지원해 2~3년 내 공장 가동이 가능하도록 한다. 한국은 어떤가. SK하이닉스 용인 제1공장과 소재·부품·장비 협력단지 조성에 약 10년이 걸렸다. 인프라 구축 지연이 반복된다면 글로벌 반도체 수퍼사이클의 과실을 온전히 누리기 어렵고, 2030년 이후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K-반도체 산업 성장의 전제 조건은 인프라, 특히 전력이다. 지금부터 정부가 기업, 국민과 소통해 전력망 구축 계획을 만들고, 올해 6월부터 시행 예정인 반도체특별법 중 5개년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기본 계획에 포함돼 장기적인 반도체 전력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반도체는 타이밍이 핵심이다. 글로벌 AI 열풍을 기회로 만들 수 있느냐는 반도체 인프라 구축, 그리고 정부의 치밀한 계획과 실행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