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세계 최강의 주먹을 거칠게 휘두르고 있다. 특수부대를 동원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압송과 그린란드 편입 주장에 이어 이란 공습 가능성까지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식민지 쟁탈을 벌이는 제국주의 시대로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 같다. 세계는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칙이 없고 모든 사안을 거래로 취급하며 즉흥적으로 큰일들을 벌이기 때문이다.
군수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비판
한국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가속
기업의 혁신·투자 적극 유도해야
하지만 트럼프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고 힘을 키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국방비를 50% 늘리고 미군을 최첨단 장비로 재무장시키면서 군수업체들에 자사주 매입을 거의 금지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다.
행정명령은 군수업체들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을 생산능력과 혁신, 적기 납품보다 우선시했고, 그 결과 전쟁물자 부족 사태가 벌어졌다고 강조했다. 행정명령에 서명한 지난 7일 트럼프는 트루스 소셜에 “금융 꼼수(financial gimmicks)로 수십억 달러가 허비됐다”며 “군수업체들이 월가의 배를 불려 주면서 자신들의 공장은 굶겨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 정부는 지금 트럼프 정부와 정반대 방향으로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주주환원을 기업의 최우선 과제라고 부추기며 생산능력과 혁신, 적기 공급을 우선순위의 뒤로 밀어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를 강제로 소각하는 법안마저 곧 통과시키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공익에 기반을 둔 경제 논리도 없고,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대한 실증도 전무하다.
자사주 매입·소각론자들은 경제 전반에 어떤 혜택이 있는지는 도외시하고 주가만 바라본다. 주가도 중장기는 관심 없고 단기 주가에 몰입한다. 중장기 주가는 자금을 동원해 생산능력을 키우고 혁신을 해야 그 결과로 올라간다. 보유 현찰로 내 주식을 사서 태워 없애는 일로 기업가치가 오를 이유는 없다. 자사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시장 수요가 늘어나고 거기에 편승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면서 단기적으로만 주가가 오를 수 있다.
행정명령 이후 미국 방산업체들의 주가 움직임은 이 단순한 원리를 거꾸로 증명해줬다. 주요 방산업체 주가는 행정명령 직후엔 10% 이상 떨어졌다. 금융 꼼수를 믿는 투자자들이 자사주 매입이 없으면 주가가 내려간다고 생각해 매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산업체들 주가는 금세 회복돼 행정명령 전보다 더 높아져 있다. 정부가 방위비를 대폭 늘리며 구매를 많이 하는데 중장기적으로 주가가 올라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의 힘은 군사력보다 기업들의 생산 및 혁신 능력에서 나온다. 지난해와 올해의 주가 상승도 그 능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약진은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등을 달성한 뒤 지속해서 혁신하며 생산능력을 키운 것이 인공지능(AI) 투자 붐과 맞물려 벌어진 것이다.
최근 현대차 주가의 급등도 로봇 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선제적으로 인수하고 현대차의 제조능력과 결합하는 혁신 노력을 해오던 가운데 구글 딥마인드의 두뇌를 붙이는 ‘피지컬 AI 3자 동맹’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차가 ‘돈 먹는 하마’라며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포기하고 보유 현찰로 주주 환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자사주 소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꼼수 정도가 아니라 사실도 왜곡한다. 이들은 “글로벌스탠다드는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것”이라거나 “자사주를 기업 자산으로 여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상장기업의 절반 이상이 법인을 두고 있는 델러웨어주는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소각의무가 없다. 한국과 거의 똑같다. 유럽에서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일본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2000년 초 델러웨어식으로 바꿨다.
이재명 대통령의 ‘코스피 5000’ 대선 공약이 거의 실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누구를 위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논리와 실증이 없는 정책의 뒤에는 사익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힘을 키우는 정책인지 일부를 위한 금융 꼼수인지 분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