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안병억의 브뤼셀의 창] 경제 체질 개선으로 EU 저성장 탈출 이끄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중앙일보

2026.01.20 07:27 2026.01.20 12:3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2010년 초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경제위기 때 스페인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로존의 구제 금융을 받았다. 당시 금융시장은 경제 위기에 처했던 남유럽 국가를 뭉뚱그려 ‘PIGS(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라는 멸칭을 만들어냈다.

그런 스페인이 달라졌다. 최근 유로존에서 스페인의 높은 경제 성장률이 화제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어 경제 규모가 4번째인 스페인 경제는 지난해 2.9%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보다 0.9%포인트나 높다. 관광 산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까지 적극 유치하면서 달라진 것이다. EU의 지원도 이를 도왔다.

스페인 성장률 독일·프랑스 압도
이탈리아, 복지 수술로 예산 절감
개혁 인정 받아 외국인 투자 늘어

정근영 디자이너
방문객 수 기준으로 스페인은 프랑스에 이은 세계 2위의 관광 대국이다. 2024년 1억200만 명이 프랑스를 방문했고, 2위인 스페인 방문객은 이보다 800만 명이 적었다. 지난해 스페인을 찾은 방문객은 1년 전보다 300만 명이 더 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보복 관광이 폭증하면서다.

정근영 디자이너
풍부한 재생에너지 덕에 인공지능(AI) 투자 붐을 타고 대규모 데이터센터도 유치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아마존웹서비스(AWS)다. 2012년 스페인에 소규모로 투자를 시작했던 AWS는 2년 전에는 2033년까지 157억 유로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투자에서 계획한 액수보다 6배 급증한 것이다. 스페인이 전력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점차 늘리고 전력 인프라를 견실하게 갖췄기 때문이다. 스페인 데이터센터협회에 따르면 현재 스페인에는 140개가 넘는 데이터센터가 가동 중이다.

전력 인프라 강화한 스페인
특히 주목할 부분은 새로 건설하는 데이터센터의 경우 전력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계획이란 점이다.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를 재생에너지로만 운영하는 건 보기 드문 시도다. 이를 가능케 하는 건 풍부한 재생에너지다. 지난해 스페인 전력 생산의 56%가 재생에너지에서 나왔다. 지중해성 기후 덕에 태양광과 풍력이 각각 25% 정도를 차지했다.

스페인 경제 성장을 이끈 또 다른 동력은 EU의 경제회생기금(ERF) 지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인 2020년 독일 주도로 8000억 유로(약 1360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저성장에 직면한 회원국을 우선 지원했다. 2021년부터 6년간 이탈리아에 2000억 유로, 스페인에 1630억 유로를 지원했다. 2021년 기준 각각 두 나라 국내총생산(GDP) 10%에 해당하는 액수로, 지원액의 절반가량은 무상 지원이다.

경제가 급증하며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인력 유입도 늘었다. 2022년에 70만 명의 순이민자를 기록한 뒤 매년 순이민자는 60만 명을 넘고 있다. 과거 식민지였던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 인력이 유입되며 독일과 프랑스보다 사회적 갈등도 적었다.

스페인이 괄목할 경제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면 이탈리아 경제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스페인처럼 관광 대국인 이탈리아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이 회복됐다. ERF의 지원으로 인프라와 친환경 산업 투자를 늘리며 2023년 경제 성장률은 EU 평균보다 두 배 정도 높았지만 이후 정체를 보여왔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탈세를 과감하게 단속하고 복지 지출을 삭감하는 등 실용주의 정책을 펼쳤다. 대표적인 것이 2019년부터 빈곤 가정에 지원하던 시민소득을 폐지해 연간 90억 유로를 절감한 일이다. 이런 정책으로 2023년 GDP의 7%를 넘었던 재정적자가 지난해 말 3% 정도로 크게 줄었다.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려 향후 3년간 숙련직 비자 발급을 2023~2025년보다 10%포인트 늘렸다.

이탈리아, 재정적자 줄여 체질 개선
경제 체질 개선을 통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경제가 호전되며 외국인 투자자의 대접도 달라졌다. 지난달 26일 기준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와 독일 동일물의 격차인 스프레드가 2009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 10년 만기 국채 대비 이탈리아의 스프레드는 0.7%포인트, 스페인은 0.5%포인트로 좁혀졌다. 올해는 격차가 더 좁혀져 스페인은 0.3~0.4%포인트, 이탈리아는 0.5~0.6%포인트로 예상된다.

EU 최대의 경제 대국인 독일 국채 금리는 유럽 자금시장에서 기준 역할을 한다. 경제가 안정돼 있기에 투자자들이 선호해 금리가 낮다. 그런 만큼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가 작을수록 그 나라 경제가 자금시장에서 안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탈리아의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와 올해의 경우 EU 평균보다 낮지만 시장에서 멜로니 총리의 지속적인 개혁 정책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짓누르는 프랑스
반면에 프랑스의 국채 금리는 지난해 스페인보다 더 높았다. 의회에서 과반을 상실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총리를 4명이나 교체했지만 아직도 의회에서 올해 예산을 승인받지 못했다.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이나 중도좌파 정당 모두 레임덕에 처한 마크롱 대통령을 더 압박해 조기 총선을 치르려고 하지만 마크롱이 거부하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짓누르는 모습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PIGS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EU의 저성장 탈출에 기여하고 있다. 회원국 간 경제력 격차 해소가 EU 경제 통합의 주요 목표임을 감안하면 두 국가의 분발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지난해 기준 GDP에서 차지하는 관광 산업의 비중이 스페인 16%, 이탈리아 13%로 여전히 높다.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으로 현지 주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스페인은 데이터센터 유치와 컨설팅 산업 육성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 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경제 성장에 기여했던 ERF가 올해 종료되는 만큼 스페인 경제가 외부 지원 없이 자립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