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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의 시시각각]도둑정치, 최고의 수익모델

중앙일보

2026.01.20 07:29 2026.01.20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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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0일 미전역에서 개봉하는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다룬 다큐 '멜라니아' 포스터.
지난해 초, '오징어 게임 시즌 1' 제작비(200억~300억원 추정)를 두 배 가까이 훌쩍 뛰어넘는 4000만 달러(580억원) 계약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전형적 도둑정치(kleptocracy)"라는 비판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멜라니아'가 오는 30일 미전역에서 개봉된다. 톱모델 출신 은둔형 퍼스트레이디라는 충분한 상품성이 있기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 영화와 시리즈 제작 자체는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왜 민주당 지지자 등은 물론 대다수 영미권 주류 언론들은 거리낌 없이 '도둑정치'라고 비판하는 걸까.

아마존, '멜라니아'에 580억원 베팅
반독점 규제 피하려 우회 '뇌물' 의혹
민주당 공천 헌금 도둑정치 아닌가
돈 흘러가는 구조가 도둑정치에 딱 들어맞는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는 도둑정치를 고위 정치권력이 엘리트 네트워크를 가동해 사적 이익을 훔치는 것으로 정의한다. 아마존 창업자이자 의사회 의장인 제프 베저스 부부가 마러라고에서 트럼프 부부를 만난 지 불과 2주 만에 아마존은 비공개 경쟁 상대였던 파라마운트(400만 달러)나 디즈니(1400만 달러)보다 많게는 10배, 적어도 세 배 가까이 큰돈을 주고 멜라니아 다큐 라이센스를 사들였다. 일반적인 다큐 라이센스보다 지나치게 높은 비용을 지불한 것도 문제지만, 이 중 70%(2800만 달러, 408억원) 이상이 대통령 아내인 멜라니아 개인과 그가 세운 제작사 뮤즈 필름스로 들어가는 구조라는 게 더 논란이었다.

아마존은 연방거래위원회(FTC)와 17개 주법무장관으로부터 기업 존립을 위협받는 반독점 소송을 당한 상태라, 정치·사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대통령 가족에게 사실상 뇌물을 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흘러나왔다. 더욱이, 예고편 공개 후 알려지지 않은 멜라니아의 내면을 다룬 게 아니라 과시적이고 화려한 홍보 이미지로 가득 찼다는 악평이 나오면서 "백악관 홍보실용 영상을 아마존이 4000만 달러 뇌물을 주고 샀다"(오바마 측근인 전 NSC 대변인 토미비어터)는 식의 비판마저 터져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반부패·반독점 규제 대상 기업들이 정권에 돈을 우회적으로 주는 형식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다큐가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여기서 적잖은 이들이 제기하는 의문 하나는 4000만 달러라는 거금이 과연 그만한 돈값을 하느냐 여부다. 답부터 말하자면, 하고도 남는다. 값비싼 물가와 부동산값 탓에 한창 생활비 부담 능력(affordability)이 화두로 떠오른 요즘 미국 보통 사람 눈높이에서는 4000만 달러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하지만 아마존 시총 대비 0.002%, 베저스 개인 자산 대비로는 0.014%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베저스는 증시에서 아마존이나 본인 재산의 1~2시간 변동 폭에도 못 미치는 '푼돈'을 써서 최고 권력자 환심을 사는 방식으로 규제 리스크에 대한 보험료를 지불했다는 얘기다. 베저스 입장에서 보자면 최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비즈니스 결정, 트럼프 일가 입장에선 정치를 최고의 수익모델 상품으로 만든 셈이다.
강선우 의원에게 공천 헌금 1억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는 김경 서울시의원이 지난 18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했다. 연합뉴스
장황하게 멜라니아 얘기를 쓴 건, 요즘 떠들썩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헌금 비리 의혹 때문이다. 등 떠밀려 마지못해 탈당한 김병기 전 민주당 원내대표와 앞서 탈당한 강선우 의원 간 녹취를 통해 민주당 서울시의원 공천 시세가 1억원이라는 게 확인됐다. 이 뉴스를 본 많은 먹고살기 어려운 보통 국민은 "국회의원도 아니고 고작 시의원 자리에 1억원이나 쓰느냐"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하지만 보도를 보면 1억원은 금세 수백 배 불릴 수 있는 '푼돈'에 불과하다. 김 시의원이 상임위를 옮겨갈 때마다 가족 회사가 수백억 원대 용역을 따냈으니 하는 말이다.

정치권력을 사적 수익으로 환산하는 미국식 도둑정치 방식과 돈 액수만 다를 뿐 똑같이 닮았다. 1억원 써서 수백억 원 번 이번 사례만 놓고 보자면 현재 한국에서 정치는 최고의 수익모델 중 하나다. 이러니 민주당식 도둑정치가 수그러들 리가 없다. 암울하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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