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공정위, LTV 정보교환도 담합…시중은행에 과징금 2700억 부과

중앙일보

2026.01.20 19:01 2026.01.20 22:3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이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교환해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담합을 했다며 수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했다. 금리 등 가격 자체가 아닌 대출 조건인 LTV 정보 교환만으로 담합을 인정한 첫 사례여서, 향후 법적 다툼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1일 4대 시중은행(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이 담보인정비율(LTV)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담합 행위를 했다며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연합뉴스
공정위는 21일 LTV 정보를 교환ㆍ활용해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한 혐의로 4개 시중은행에 시정 명령과 함께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은행별 과징금은 국민은행 697억원, 신한은행 638억원, 하나은행 869억원, 우리은행 515억원이다. 공정위는 이들 은행이 LTV 정보를 공유해 유사한 수준으로 맞추는 방식으로 담합을 벌여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전국 부동산을 종류와 소재지에 따라 적게는 736개, 많게는 7500개로 세분화한 뒤 각각 LTV를 부여해 담보대출 한도 등을 결정한다. LTV가 높으면 대출 한도가 늘어 영업에는 유리하지만, 대출금 회수 리스크가 커지는 만큼 각 은행의 핵심 영업 전략에 해당한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문제는 4대 시중은행이 이 같은 LTV 정보 전체를 장기간에 걸쳐 수시로 서로 교환하며 LTV 산정에 활용해 왔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실무자들이 직접 만나 LTV 정보를 인쇄물로 전달받은 뒤 이를 엑셀 파일에 입력하고, 원본 문서는 파기하는 방식으로 정보 교환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법 위반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정보 교환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정황도 확인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 금지 조항이 신설된 2021년 말 이후 행위만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은행들은 이렇게 확보한 다른 은행 LTV 정보를 자사 LTV에 반영하는 내부 기준을 마련해 체계적으로 활용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자사 LTV가 경쟁 은행보다 높으면 이를 낮추고, 반대로 낮으면 이를 높이는 방식으로 4개 은행의 LTV는 장기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다. 공정위는 이를 통해 은행들이 영업 전략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정적인 이익을 확보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이런 정보교환 담합이 가계와 중소기업ㆍ자영업자 등 금융 소비자 피해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경쟁 상황이라면 영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LTV를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할 유인이 있지만, 담합을 통해 대출 회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수준의 낮은 LTV가 굳어지면서 대출 한도가 줄고 거래은행 선택권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4대 시중은행의 평균 LTV는 62%로, 농협은행 등 비담합은행 평균(69.5%)보다 7.5%포인트 낮았다.

공정위 관계자는 “각 은행은 경쟁 은행의 영업 전략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중요 거래조건인 LTV를 통한 경쟁을 회피함으로써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했다”며 “반대로 차주들은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에서 선택권이 제한되는 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해당 담합 관련해 은행들이 올린 이자수익을 6조8000억원으로 산정했다.

이번 제재는 2021년 12월 말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 금지’ 규정이 시행된 이후 첫 제재 사례다. 공정거래법은 가격ㆍ생산량뿐 아니라 대통령령으로 정한 거래조건 정보를 교환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도 부당 공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서 LTV 산정의 적정성 제고나 신용리스크 감소 등 효율성 증대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고, 경쟁제한 효과만 두드러졌다고 판단했다.

다만 시중은행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은행들은 LTV 정보는 가격과 달리 민감한 비밀 정보가 아니고, LTV를 낮추면 대출 규모가 줄어들어 담합의 실익도 크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또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따라 LTV를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도 정부의 대출 규제가 적용된 주택담보대출은 과징금 산정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시중은행들은 소송 등 법적 대응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공정위 제재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담합 조사는 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열어 금융사의 과도한 지대추구를 막을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이후 본격화됐다. 당초 대출금리와 수수료 등 광범위한 조사가 진행됐으나, 이후 LTV 정보교환 담합으로 범위가 좁혀졌고, 지난해 말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재심사 명령이 내려지며 제재 수위 결정이 올해 초로 미뤄졌다.



안효성([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