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철근 생산능력 1·2위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감산에 나서면서 “팔수록 손해”였던 철근 시장 재편이 가시화하고 있다. 다만 감축 여력이 크지 않은 군소 업체를 재편에 동참시켜야 하고, 나아가 감산 이후 근본적인 산업 ‘고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현대제철은 지난 20일 인천 공장 철근 90t 전기로 제강 및 소형 압연 설비를 폐쇄하는 방안을 노사협의회에 제시했다. 이 라인은 연산 80만t 규모 생산라인으로, 현대제철 인천공장 철근 생산력(총 160만t) 절반가량을 폐쇄하는 수순이다.
2위 철근 제강사 동국제강 사정도 다르지 않다. 수요 절벽에 2024년 여름에는 인천공장을 야간에만 가동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연산 220만t 규모 2개 라인 생산을 열흘간 완전히 중단했다. 현재는 일부 라인만 돌리는 식으로 생산력을 100만t 정도 줄인 상황이다.
문제는 선두 회사들의 감산 노력에도 공급과잉 해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철근 시장은 최근 건설 경기 악화로 수년째 ‘만성적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22년 1050만t 규모였던 국내 철근 수요는 2023년 995만t→2024년 797만t→ 2025년(11월까지) 658만t으로 급감했다. 국내 철근 생산력 1200만~1300만t에 비춰보면 남는 게 500만t 이상이라 현대제철(80만t), 동국제강(100만t) 감산만으론 충분치 않단 지적이다.
하지만 철근 생산 8개사 중 나머지 6개 군소 제강사가 자율 감산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감축을 바라는 회사도 있고, 생계가 이것 뿐이라면 수익성을 포기하고 계속 생산하자는 회사도 있어 동상이몽”이라며 “한쪽이 줄여도 다른 쪽이 생산을 늘리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감산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동준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명예특임교수는 “생산력을 선제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1·2위 업체 외에 다른 업체를 어떻게 조율할 것이냐는 정부의 고민거리”라며 “쉽지 않겠지만 기업 면담 등을 통해 의지를 확인해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11월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며 철근을 중점 대상으로 선정했다. 수입 비중이 높은 열연·냉연 대비 내수 기업 중심인 철근은 자율 조정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문신학 산업부 차관은 지난 13일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에서 “정부가 비난을 받더라도 철강 산업 구조 재편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산업부는 1분기 중 업체별 자율조정 방안을 구체화하는 것을 준비 중이지만, 자칫 담합으로 비칠 수 있어 조심하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감산 외에도 해외 판로 개척이나 고품질 제품 생산 등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고 있다. 원화값이 떨어지고 미국 내 철근 가격이 오르면서 50% 관세에도 수출이 늘면서다. 지난해 11월 철근 수출량은 1만3188t으로 전년 동기(888t) 대비 1385% 증가했다. 다만 업계는 수출이 근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근 수출로 큰 수익을 낸다기보다 적자 안 내며 팔려다 보니 수출까지 하는 것”이라며 “일시적인 자구책 정도”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 탱크에 쓰이는 극저온용 철근이나 높은 강도의 무게를 견디는 철근 등 고품질 제품을 개발해 차별화를 시도 중이다. 민동준 교수는 “기업은 제품 고도화를, 정부는 철근 규격 기준 강화로 질서 있게 시장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