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이 그린란드 영유권을 두고 정면충돌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양측의 영토 분쟁이 관세 갈등에 이어 ‘자본 전쟁’으로 비화하면서다.
그린란드 병합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20일(현지시간) 덴마크가 ‘금융 보복’의 포문을 열었다. 덴마크 학술인 연기금 아카데미커펜션은 보유 중인 미 국채 1억 달러(약 1480억원)를 이달 말까지 전량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학자들을 위해 약 250억 달러 규모를 관리하는 연기금이다.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안데르스 셸데는 블룸버그에 “미국은 기본적으로 신용도가 좋지 않고, 장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재정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직격했다. 1억 달러는 월가 기준으로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사실상 그린란드 문제와 관련 덴마크의 첫 실력 행사로 해석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앞서 지난 18일 도이체방크는 보고서를 통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지속적 위협에 맞서 “무역이 아닌 자본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본의 무기화’ 가능성”을 제기했는데 현실이 됐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 역시 19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무역 전쟁과 무역 적자의 이면에는 자본과 ‘자본 전쟁(Capital Wars)’이 있다”며 “갈등이 커진다면 자본 전쟁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상대국이) 미 국채 등을 매입하려는 의지가 이전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등 뉴욕의 3대 지수가 2% 안팎 주저앉았다.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월가의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 지수(VIX)는 20.09로 급등했다. 이 지수가 20을 넘은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이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지면서 금값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480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화와 미 국채마저 흔들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인 달러인덱스는 전날(99.39)보다 0.8% 하락한 98.64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0.06%포인트 오른 4.29%, 30년물은 0.08%포인트 상승한 4.92%를 기록했다. 4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채권 가격은 하락) 황산해 LS증권 연구원은 “그린란드 사태로 ‘셀 아메리카’ 흐름이 강화된 데다 일본 국채의 금리 급등이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본격적인 ‘셀 아메리카’의 현실성은 낮다고 판단한다”며 “유럽 내부적으로도 미국 자산 매각 시 손실 확대 위험에 노출될 수 있으며, 트럼프가 예고한 2월 1일 관세 부과 전까지 협상의 여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시장의 ‘패닉 셀링’(공포 투매)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JP모건 자산운용의 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 밥 미셸은 “상황이 다소 혼란스럽고 시장이 약간 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다”며 “지난해 관세 발표로 투자자들이 동요했을 당시 당국이 대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부가 시장 안정을 되찾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스위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19~23일)의 화두도 그린란드 분쟁에 쏠렸다. 포럼에 참석한 미·유럽 금융권 수장들은 잇따라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 코메르츠방크의 베티나 오를로프 최고경영자(CEO)는 “침착함을 유지해야 한다”며 “지난해 관세 사태가 준 교훈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ING그룹의 스테판 반 리스윅 CEO도 “지정학적 위험과 무역 분쟁, 공급망 문제는 경제의 안정성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무역 패턴을 바꾸거나 생산 거점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