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원화값은 달러당 1480원선을 뚫고 추락하다(환율 상승) 방향을 틀어 장중 1460원대로 솟구쳤다. 이재명 대통령의 ‘1400원 전후’ 복귀 발언에 외환시장이 즉각 반영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당국에 의하면 한두 달 정도 지나면 (환율이) 1400원 전후로 떨어질(원화값 상승)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발굴하고, 환율이 안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발언은 당장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날 미국 달러당 원화값은 1480.4원에 거래를 시작해 개장 직후 1481.3원까지 하락했다. 장중 1480원 선이 깨진 것은 지난해 12월 24일(1484.7원) 이후 17거래일 만이다. 해외투자 열풍에 더해 미국의 그린란드 관세 보복 등 대외변수가 겹친 영향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원화값은 달러당 10원 넘게 급등(환율은 하락)해 1468.7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전 거래일보다 6.8원 오른 1471.3원에 거래를 마쳤다. 주간 종가 기준으로 원화값이 하락한 것은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이례적 구두개입이 있었던 이달 15일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선 이날 대통령의 발언을 전례 없는 ‘구두개입’으로 평가한다. 익명을 요청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과거 외환위기 국면 등에서 대통령이 외환시장의 전반적 상황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환율이 거론된 적은 있지만, 특정 시기와 특정 레벨을 직접 제시한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에 이어 추가적인 외환시장 안정화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원화가치 하락 배경엔 한국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흐름이 압도적으로 컸던 측면이 있다”며 “자본 유출 압력을 낮추는 조치와 함께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추가 대책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 책임자인 이 대통령이 환율을 언급한 만큼 외환당국이 보다 적극 대응에 나설수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 발언이 당장 원화값 하락세를 진정시켰지만, 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이 해소된 건 아니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연말 정부가 내놓은 시장 안정화 조치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그린란드를 둘러싼 정치 리스크도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그린란드 병합 구상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에 대해 내달 1일부터 10%, 6월 1일부터 25% 관세 부과를 예고하자 EU도 통상위협 대응조치(ACI) 발동 검토로 맞섰다. 갈등 확전 가능성에 ‘셀 아메리카(미국 자산 매도)’ 우려가 커졌다. 2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전날(99.39)보다 0.8% 하락한 98.64를 기록했다.
달러가 약세로 돌아섰지만 원화는 위험통화 인식과 해외자금 이탈 영향으로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정부의 관리 의지가 저항선인 1480원에 맞춰져 있지만, 이 수준이 깨질 경우 1500원대 진입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원화 강세를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로버트 슈바라만 노무라 글로벌 매크로 리서치 대표는 이날 세계경제연구원 주최 조찬 강연에서 “견고한 경상수지와 반도체 수출 호조 등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원화 가치가 현재 역사적 저점 수준에서 벗어나 올해 하반기부터 미 달러 대비 반등하는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연말 달러당 원화값 전망치로 1380원을 제시했다.
정부의 강력한 개입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은 주식처럼 정책 의지만으로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며 “대통령이 특정 레벨을 언급했는데 실제 흐름이 따라오지 않으면 시장 신뢰가 흔들릴 수 있고, 현재 환율 불안은 수급 불균형이 주된 원인인 만큼, 이런 발언이 오히려 (달러 매수) 심리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