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을 사회에 기부하면 상속세 감면 혜택을 주는 ‘한국형 레거시(legacy) 10’ 제도가 입법화를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산기부 활성화 제도를 도입할 경우 유산기부는 세수 감소보다 2.3배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그만큼 초고령 사회 복지사각지대를 메울 공익 재원이 늘어나 사회로 돌아가는 편익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21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여야 간사인 정태호(더불어민주당)·박수영(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공동주최한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 도입에 관한 정책 토론회’에서 이같은 내용이 공개됐다. 여야 의원은 이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이르면 이달 중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할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손봉호 푸른아시아 이사장,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황영기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이사장 등 민간 복지 및 자선단체 회원 500여명이 참석했다.
여야가 협치로 추진하는 개정안은 상속재산(과세가액)의 10%를 초과해 공익법인 등에 기부하면 상속세 산출세액의 10%를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영국이 2012년 유산의 10%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경우 상속세율을 인하해주는 레거시 10을 시행한 뒤 유산기부액이 23억2000만 파운드(약 4조6069억원)에서 10년 후 45억 파운드(약 8조9358억원)로 늘어난 데서 착안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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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 감소해도…유산기부로 복지 사각지대 메운다
한국형 레거시 10은 상속세 10% 감면에 따라 세수가 일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유산기부가 공익목적 사업에 쓰이며 정부 복지 재원의 대체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란 분석이 제시됐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날 발표에 나서 지난달 한국세법학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형 레거시 10이 도입되면 상속세 세수 감소폭은 연간 약 1253억원(납세자 중 10분의 1만 유산을 기부할 경우)에서 6263억원(납세자의 절반이 유산기부시) 수준일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에 같은 시나리오대로 유산기부액은 연간 약 2900억원에서 최대 1조4500억원이 증가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박 교수는 “세수는 일부 감소하겠지만, 공익 재원이 훨씬 더 커지면서 정부 지출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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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기부, 전체 유산의 1.46%뿐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집계하는 2024 세계기부지수(World Giving Index)에 따르면 한국은 142개국 중 88위(기부지수 38점)로 세계 평균(40점)에도 미치지 못하는 ‘기부 빈국’이다. 특히 한국은 전체 상속재산(과세표준 기준)에서 유산기부 비중이 약 1.46%에 불과하다. 전체 기부금에서도 유산기부는 1% 정도다. 약 30%인 영국은 물론 미국(8.3%), 일본(5%)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이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장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한국형 레거시 10 도입 시 유산기부 의향이 있는 응답자가 53.3%인데, 유산기부는 1.46%뿐이라는 것은 제도와 정책의 공백 때문에 발생한 괴리로, 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도 “유산을 가족에게만 물려주면 불평등은 심화하지만, 사회에 물려주면 불평등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김희정 한국자선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영국 재무부가 2011년 ‘레거시 10’ 도입 당시 ‘정부는 세수 감소의 우려보다 민간 자본이 노숙인 지원, 난민 구호, 장애인 복지 등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 사용됨으로써 얻는 사회적 이득과 정부 예산 효율성 증대가 더 크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는데 실제 그대로 됐다”며 “한국형 레거시 10은 ‘사회적 상속’을 촉진할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