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의무를 다했다가 사용자로 분류돼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될까 걱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는 3월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두고 대형 로펌을 두드리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노조법상 사용자’로 분류돼 분쟁에 연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원청 사용자가 하청 노동자의 근로 시간이나 작업 방식 등을 ‘구조적으로 통제’할 경우, 하청 노동자가 회사(원청)를 상대로 교섭권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다. 문제는 산안법과 중처법을 지키기 위해 원·하청 간 안전관리를 강화할수록, ‘구조적 통제성’이 충족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중대재해를 피하기 위해 안전관리에 힘 쓸수록 노조법상 사용자로 분류될 가능성도 함께 커지는 셈이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박은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산업 안전과 관련된 시설이나 설비는 대부분 원청이 소유·관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위험 요인을 발굴하고 통제할 책임 역시 원청에 귀속되는 만큼, 안전 의제에 한해서는 사용자성 인정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지점은 안전 문제를 계기로 교섭 테이블에 앉았다가, 임금이나 인사 등 다른 의제로까지 교섭 범위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아예 교섭이 열리지 않는 구조를 설계해 달라’며 로펌 문을 두드렸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답을 듣고 돌아서는 기업들도 많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안전 의제로 일단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교섭 판이 한 번 짜이면 임금이나 인사 문제까지 삽시간에 끌려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경영계는 이 같은 구조가 오히려 산업안전 정책의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고 본다. 21일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과 주요 기업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도 이런 우려가 제기됐다. 경총은 지난 16일에도 “산업안전을 위해 노력할수록 법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구조라면, 원청이 하청의 안전관리 지원을 주저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노동부에 전달했다.
교섭 범위도 논란이다. ‘석유화학 구조조정’처럼 경영상 결정 자체는 쟁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 지침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수합병(M&A)이나 사업 양도·분할 같은 경영상 결정은 그 자체로 근로 조건의 변동 가능성을 내포한다”며 “전환 배치나 정리해고 등 어떤 수준의 변화를 근로 조건 변경으로 볼 것인지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오는 3월 전후로 대규모 ‘춘투(春鬪)’가 벌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실제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최근 소속 하청노조들에게 원청과 직접 교섭을 독려하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진창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노동팀장)는 “원청과 하청 노조 사이에 법에 따라 교섭 의무가 발생하는 미지의 영역을 맞닥뜨릴 수 있다”며 “교섭 주체와 범위, 하청 근로자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여부를 둘러싼 쟁점들은 결국 법원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