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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내란재판 방청기

중앙일보

2026.01.21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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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준 사회부 기자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겠나 싶다. 지난 9일과 13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의 내란 혐의 재판을 꼬박 들어갔다. “같이 낄낄거리고 피고인과 함께 웃고 아주 즐겁다”(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며 여권의 집중성토를 받는 지귀연 부장판사의 재판이다. 현장에선 실제로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듣던 대로기는 했다. 지귀연 부장은 변호인들의 발언을 거의 제지하지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9일엔 변호인단의 ‘재판 필리버스터’로 검찰은 구형을 못 했고, 13일 재판은 이튿날 새벽 2시 30분에야 가까스로 종료했다. 기자들이나 피고인들이나 변호인들이나 체력적으로 녹초가 됐다. 몇몇 피고인이나 변호인들은 승리한 듯 쉬는 시간에 만면에 웃음기를 보였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도 목격했다. 판사가 사과하는 모습 말이다. 변호인단이 딴죽을 걸자 지귀연 부장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변호사님 말씀에 토 달아서 죄송하다” “기분 나쁘셨으면 100% 내 잘못이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고 조금이라도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을 재판 중인 지귀연 부장판사. [연합뉴스]
여권이 지귀연 부장을 비난하는 지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재판 중계를 특검법에 의무사항으로 못 박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재판 중계를 하면 판사가 주도적으로 심리를 진행하기 어려워진다. 극단의 정치 진영이 법정 밖에서 대립하는 내란 재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변호인단에 차고 넘칠 만큼 변론 기회를 보장하지 않으면 정치적 분란의 소지를 남길 수 있다.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변론 시간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준다고 해서 판사가 딱히 이들에게 우호적인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통상적으로는 이럴 땐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이 아니다. ‘절차적 만족감’을 준 뒤 결과에 불만을 못 품게 하려는 재판 운용 전략인 경우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실력 있는 변호사일수록 말 잘 들어주는 판사를 두려워한다. 거기다 지귀연 부장은 법원 안팎에서 “선고 형량이 높다”(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고 정평 나 있는 법관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지귀연 부장이 변호인단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할 때는 몇몇 기자들끼리 눈을 마주쳤다. 그때 한기(寒氣)를 느낀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박현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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