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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산기술 유출 막을 빗장, ‘간첩법’ 속히 개정을

중앙일보

2026.01.2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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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승 KAIST 안보융합원 교수·전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삼성의 반도체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전직 직원들이 무더기 구속기소된 소식은 충격적이다. 대한민국 산업기술 보호의 취약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줘서다. 수십년간 막대한 투자와 인재 양성을 통해 축적해온 첨단 기술이 기술 보호 실패로 외부로 유출됐다.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니 미·중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기술 유출 리스크에 경종을 울린 셈이다.

반도체 기술 유출 시 엄청난 피해
방산 기술 유출되면 안보에 직결
국가자산 지켜줄 안전장치 필요

김지윤 기자
반도체는 민간 산업이지만 그 파급력은 국가안보 영역에까지 닿아 있다. 반도체 기술 유출 관련 문제는 방위산업에도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천궁·천무, K2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등 주요 국산 무기체계를 통해 K-방산의 국제적 위상과 방산기술의 전략적 가치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방산 수출 확대 과정에서 국가안보와 직결된 방산기술 유출 위험이 생길 수 있다. 최근 방산 수출은 단순한 완제품 판매를 넘어 기술 이전, 현지 생산, 공동 개발로 확대되고 있어서 핵심 기술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무기체계에는 설계기술과 소프트웨어, 전술 개념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다. 일부 기술 유출만으로도 모방 무기 개발이나 대응 능력 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산업적 손실을 넘어 장병의 생명과 직결된다. 반도체 기술 유출이 산업적 손실이라면, 방산기술 유출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기술 보호에 대한 인식과 제도는 방위산업의 성장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수출 확대 과정에서 늘어난 협력업체, 해외공동개발 증가, 전문 인력의 이동은 새로운 보안 취약 문제를 수반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이미 기술 유출의 위험성이 확인된 상황에서 방산 분야마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최근 글로벌 방산 시장은 단순히 성능 경쟁을 넘어 정보 전쟁터가 됐다. 미국은 이미 1996년부터 ‘경제 스파이법’을 제정해 전략기술 유출을 국가안보 침해로 엄단하고 있다. F-35 전투기 설계도 탈취 시도도 단순 절도가 아닌 국가 존망을 위협하는 행위로 간주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미사일 기술 유출을 시도한 과학자들을 반역죄로 처벌했다. 일본과 영국은 경제안보 관련 법안을 정비해 자국의 첨단 기술이 제3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스파이 행위의 대상을 단순히 ‘적국’에 한정하지 않고 ‘국익을 해치는 모든 외국 및 외국 대리인’으로 폭넓게 규정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어떤가. 형법 제98조에서 간첩죄 적용 대상을 오직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법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우방국으로 위장한 국가나 다국적 기업에 한국 무기 체계의 핵심 설계도를 팔아넘겨도 현행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산업기술보호법은 처벌 수위가 더 낮을 뿐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의 엄중함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이다.

필자가 현장에서 무기 개발을 총괄했던 경험에 비춰 보면 방산 기술은 한번 유출되면 되돌릴 수 없는 자산이다. 해외로 흘러나가는 순간 우리 군이 축적해 온 전략적 우위는 상실되고, 방산 수출 경쟁력도 타격을 받는다.

지금처럼 처벌이 약하면 경쟁국 정보기관 및 산업 스파이들에게 “한국은 적국만 아니라면 기술을 훔쳐도 가벼운 처벌로 끝나는 나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K방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법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다. 적국이냐 아니냐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국익과 안보라는 보편적 가치를 보호의 중심에 둬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이미 통과했지만, 아직도 본회의에 머물러 있는 형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돼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하다. 그것은 단순히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 방산 기업들이 안심하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국민 혈세로 일군 국가 자산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 때문이다.

첨단 무기체계가 물리적 위협을 막는 방패라면 촘촘한 법과 제도는 보이지 않는 기술 유출을 차단하는 또 하나의 방어선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 만든 창과 방패가 우리를 겨누는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기술 보호라는 견고한 빗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종승 KAIST 안보융합원 교수·전 국방과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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