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강선우 의원에게 1억원을 건넨 혐의를 받는 김경 서울시 의원이 경찰에 진술했다고 보도된 내용이다. 사실이라면 공천 헌금에 ‘시가’가 있다는 소문이 확인된 거다. 국회 경력 10여년의 전직 보좌관은 “구의원은 수천만원, 시의원은 1억원, 구청장·시장·군수는 수억원이 여야 공통의 공천 헌금 시가”라고 전했다.
지난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 서을)을 지낸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말이다.
공천헌금, 가격표 돌 만큼 부패
공천 놓고 피아도 바뀌는 요지경
공천 과정 공개 장치 도입 시급
“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구에서 구의원에 출마할 뜻을 퍼뜨리던 인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는 ‘선거 앞두고 힘드실 텐데…’라면서 들고 온 쇼핑백을 건네려 했다. 딱 보니 현금 수천만원이 든 모양새였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백 들고 나가세요’라고 고함 치면서 ‘원래 이렇게들 하십니까’라고 일갈했다. 그는 ‘다 아시면서 뭘 그러냐’ 하고는 백을 들고 나갔다. 이게 소문이 났는지 그 뒤로 돈 들고 오는 이는 없었다.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쥔 구의원, 특히 비례 구의원은 국회의원에게 헌금을 상납해야만 공천 길이 열린다는 게 공공연한 ‘관행’임을 실감했다.”
더 기가 찬 것은 이번 공천 헌금 파동의 진원지 격인 서울 동작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동작 갑이 지역구인 김병기 의원(전 민주당 원내대표)은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동작구 구의원들로부터 총 3000만원을 받았다가 돌려줬다는 의혹이 전직 구의원 2명의 탄원서를 통해 2023년 말 불거졌다. 탄원서는 구의원들과 친분 있던 당시 동작구청장 A씨가 동작 을 이수진 민주당 의원(당시)에 전달했다. 내용이 구체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 의원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 측(김현지 보좌관)에 전달해 이 대표가 조처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유야무야됐다. 이 전 의원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2023년부터 동작갑 출마를 추진했다는 소문이 당시 지역에 무성했는데, 김병기 의원이 참여한 민주당 공천 지휘부에 의해 컷오프되자, 자발적으로 이 전 의원에게 법인카드 유용 등 김 의원 측 비리 의혹을 제보했다고 한다(A씨의 제보 발언은 이 전 의원 측과 회의 과정에서 녹음됐다).
이 전 의원의 말이다. “A씨가 여러 번 제보하며 김병기 제재를 읍소하길래 ‘비리 제기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을 얘기해준 듯하다. 그랬더니 A씨가 공천헌금 의혹이 구체적으로 적시된 탄원서를 직접 들고 와 놀랐다. 내용을 보니 신빙성이 있어 2023년 12월 15일께 대표실에 전달했는데 전혀 조치가 없었고, A씨는 1주일 뒤인 12월 22일 컷오프 이의 신청마저 기각돼 낙천이 확정됐다. 이어 나도 이듬해 2월 이유 없이 컷오프 대상에 올라 탈당해야 했다. 대표실에 탄원서를 전달한 ‘죄’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A씨는 최근 “당시 탄원서는 이 전 의원이 먼저 ‘국면 전환용으로 뭐 없냐’고 하길래 구의원에게 탄원서를 받아 전달한 것”이라고 언론에 주장했다. A씨는 “(이 전 의원이) 본인이 공천받기 어렵다는 기류를 일찍 알아채고 탄원서를 내게 요구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A씨가 탄원서 제출을 주도했다”는 이 전 의원 주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그러나 정황을 보면, 2023년 12월 탄원서 제출 당시 컷오프를 당해서 대응(이의 신청)에 나설 만큼 위기에 몰린 사람은 A씨였다. 반면 이 전 의원은 두 달 뒤인 2024년 2월에야 컷오프 위기에 몰렸다. 또 이 전 의원과 그의 보좌진, A씨가 회의한 내용을 녹음한 녹취록을 보면 A씨가 김병기 의원 측의 비리 의혹을 제보하며 대표실 전달을 촉구하는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이를 바탕으로 이 전 의원이 A씨 주장을 반박하자 A씨는 “전혀 의도를 가진 것 없었다. 아무튼 오해 하실만한 기사여서 사과드린다. 죄송하다”는 입장을 이 전 의원에게 전했다. 사실상 이 전 의원의 반박을 인정한 셈이다.
이쯤 되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컷오프에 불만을 품고 김병기 비리 의혹 제기에 앞장섰던 사람이 왜 입장을 180도 바꿔 김병기에 유리하고, 본인의 제보를 도왔던 이수진에 불리한 주장을 하고 나섰을까. A씨가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다시 민주당 동작구청장 후보로 출마할 뜻이 있어 보인다는 지역 정가의 소문과 무관하지 않은 건 아닐까 짐작만 해볼 뿐이다.
이참에 ‘뇌물’과 협잡의 온상이 된 국회의원의 지방선거 후보 공천 개입은 폐지가 마땅하다. 당장 그게 어렵다면, 공천 기준·과정을 투명히 공개하는 장치라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