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22번의 10층짜리 건물은 문이 굳게 닫혔고, 오가는 사람은 없다. 해가 지면 거의 전체가 깜깜하다. 한때 대통령실로 불렸던 옛 국방부 청사의 요즘 모습이다. 대통령실이 지난해 12월 29일 청와대로 옮긴 뒤론 옛 청사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국방부는 2022년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 청사를 내주고 합동참모본부가 단독으로 사용하던 옆 건물로 이전했다. 대통령실이 나가면 옛 청사를 곧 되찾을 줄로만 알았다. 아직도 텅 빈 옛 청사만을 기약 없이 바라보고 있는 게 국방부 실정이다.
비상계엄 때도 나온 국방예산
1조5000억 해 넘겨 올초 지급
예산 삭감, 옛 청사 복귀도 못해
호국간성 사기 꺾는 일 없어야
처음엔 절차상 문제로 보였다. 국유재산을 관리하는 재정경제부가 사용 승인을 내주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국방부는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기류가 달라졌다. 정부 소식통은 “정부가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옛 청사를 노리는 부처가 여럿 있다고 한다. 국방부 청사 이전 예산 238억 6000만원은 이미 지난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이렇게 한숨 쉰다. “쿠데타나 저지르는 국방부가 무슨 면목으로….”
‘국고 비었다’는 재경부의 전화 국방부가 옛 청사 하나 때문에 자조(自嘲)적인 게 아니다. 지난 연말 사상 초유의 ‘국방비 펑크 사태’ 영향이 더 컸다. 조짐은 지난해 12월 3일 2026년도 국방예산이 65조 8642억원으로 확정될 때 보였다. 당초 정부안은 66조 2947억원이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며 2025년도 국방예산보다 8.2% 늘리겠다고 정부는 장담했다. 이 수치는 문재인 정부 때였던 2019년(8.2% 증가) 이래 7년 만에 최대폭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7.5%로, 전체 예산 증가분(8.1%)보다 낮았다. 당시 국방부는 “대역죄인데도, 국회가 더 많이 안 깎은 게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지난해 12월 26일 사달이 났다. 임종득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그날 오후 3시 40분쯤 재경부가 국고에 자금이 없어 지난해 12월 29~30일 예산 지급을 31일로 연기하겠다고 국방부에 알렸다. 재경부가 문서를 보낸 게 아니라 국방부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31일 시급한 6683억원은 막았지만, 4517억원은 여전히 미집행 상태였다. 국방부가 점검한 결과 전체 미집행 최종 금액은 5002억원이었다.
국방예산은 전력운영비와 방위력개선비로 나뉘는데, 국방부는 인건비와 부대 운영비를 포함한 전력운영비를 담당한다. 무기 체계 관련 비용인 방위력개선비는 방위사업청 몫이다. 방사청은 지난해 12월 31일에서야 기재부로부터 자금이 달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방사청이 못 받은 자금은 8036억원이었다. 회계연도의 마지막 날인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국방부·방사청의 미집행 자금은 1조 3038억원이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왔다. 곧 전역할 병사 1만5000명에게 장병내일준비적금 지원금이 안 나갔다. 장병내일준비적금은 현역 병사나 사회복무요원이 목돈을 마련하도록 정부가 저축 금액의 100%를 더 부어주는 적금 상품이다. 간부들은 지난해 12월 수당을 못 받았다. 올해 배치 예정인 국산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양산 비용 146억 6200만원과 KF-21을 업그레이드하는 연구개발(R&D) 비용 60억 7100만원도 묶였다. 군에 납품하는 기업도 안달이 났다. 정부에서 12월 대금을 못 받아 2025년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다. 군부대만 바라보고 사는 영세 자영업자의 주름도 늘었다.
무엇보다 국방부와 방사청, 군은 “국방비를 못 받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 11월과 비상계엄 사태가 났던 지난해 12월에도 국방비는 꼬박꼬박 집행됐던 터였다. 재경부는 “어느 해나 예산 중 일부는 12월이 아니라 다음 해 1월까지 이월 집행된다”며 “이례적인 상황이 전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지난 9일 국방부에 7685억원, 방사청엔 8036억원을 각각 긴급히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불용처리로 급한 불을 끄고, 2026년도 예산에서 집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불용은 쓰기로 한 예산을 실제 쓰지 못한 걸 뜻한다. 모자란 금액은 다른 예산에서 전용하거나 추가경정 때 슬쩍 얹으면 된다는 꼼수다. 이러면 예산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수출 진흥한다고 독립하려는 방사청 지난해 12월 1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국방부는 한 방 먹었다. 그때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방사청을 ‘청’에서 ‘처’로 승격하고, 국방부 산하에서 국무총리 산하로 옮겨 ‘국가방위자원산업처’로 재편할 것을 건의했다. 이 청장은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방위산업은 첨단 국가전략 산업이라는 패러다임에 맞는 행정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합니다”고 운을 뗐다. 이 대통령이 이 청장에게 ‘행정 거버넌스 개편이 필요하다’고 따로 주문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 자리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아직 내부 토론은 해보지 않았고,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했다.
방사청의 국가방위자원산업처 개편 명분은 방산 수출을 국가의 전략 수단으로 관리하고, 군 전력과 산업을 연계할 수 있도록 R&D를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기와 장비를 군에 쥐여주는 임무는 뒷전으로 밀려날 우려가 있다. 국가방위자원사업처로 바뀌더라도 획득 업무에 대한 국방부 장관의 감독을 보장하겠다고 방사청은 강조한다.
이런 일들이 겹치면서 국방부가 소외되고, 군이 홀대받는다고 느끼는 듯하다. 억측일 수 있다. 그렇다면 국방부와 군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 실마리가 국방비 펑크 사태의 규명이다. 재경부가 갑인 위치라 국방부와 방사청은 눈치를 보고 있다. 국회가 꼼꼼히 따져 왜 펑크가 났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밝혀야 한다. 국회가 자신이 없다면 감사원에 넘겨라.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간성(干城)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