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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나선 노비까지 일일이 챙겼다…'진짜 이순신'의 인간됨 [OUTLOOK]

중앙일보

2026.01.21 12:00 2026.01.2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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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3월3일까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충무공의 초상화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광복 80주년과 충무공 탄신 48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우리들의 이순신’. 사상 최대 규모에 걸맞게 현재까지 약 14만명이 찾았다는 이곳에선 전시 포스터를 비롯한 어디에서도 ‘이순신의 얼굴’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전시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충무공의 생전 모습이 아닌, 후대에 상상력으로 그려진 영정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그림 속 이순신은 문인처럼 선이 곱고 유약해 보이는 반면, 또 다른 그림 속에선 호랑이처럼 매섭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그리고 우리가 그에게 투영하는 바람이 달라질 때마다 이순신의 얼굴은 계속해서 변해왔던 것이다. 국난의 위기 속 강력한 영웅이 필요했을 때 그는 강인한 무장이었고, 평화의 시대에 그는 덕망 높은 선비였다. 결국 ‘진짜 이순신’의 얼굴은 하나로 규정될 수 없으며 그 모든 모습이 우리가 만들어낸 욕망의 거울인 건 아닐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3월3일까지) 전시장 한쪽 벽면에 『난중일기』 속 문장이 발췌돼 있다. 충무공이 막내아들 이면의 전사 소식을 들은 날의 일기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난중일기, 영웅의 기록 아닌 생존의 문장

영화 ‘한산: 용의 출현’(2022), ‘노량: 죽음의 바다’(2023) 각본을 공동 집필하면서 공의 생애를 헤집었다고 생각했는데, 전시장엔 눈길을 사로잡는 유물들이 많았다. 특히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사부유서(四府諭書)’라는 이름의 낡고 바랜 고문서 한 장이었다. 전쟁 발발 1년 전인 1591년, 임금 선조가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하며 내린 일종의 임명장이다. 이를 받아 든 이순신은 즉시 부임지인 남쪽 바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치 전쟁이 일어날 걸 예상하기라도 한 듯, 방치된 판옥선들을 수리하고 거북선을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공은 전쟁을 준비한 게 아니었다. 군인으로서, 지휘관으로서 그저 자신이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 유사시를 대비해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나라를 지키는 장수된 자의 책무였으니까.

『난중일기』 원본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고쳐 쓰고 지운 흔적들, 휘갈겨 쓴 글씨체에서 전해지는 그날의 다급함과 분노. 그것은 박제된 영웅의 기록이 아니라, 살기 위해, 그리고 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던 치열한 생존의 기록이었다. 그 생생한 모습들을 스크린 위로 옮기기 위해 수없이 읽고 또 읽었던 문장들이었지만, 유리벽 너머 실물로 마주한 그 붓 자국들 사이로 갑옷 속에 감춰져 있던 그의 가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막내아들 이면의 전사 소식을 전해 들은 날의 일기에서는 아버지로서의 슬픔과 회한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3월3일까지)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장검(국보). 슴베에는 1594년 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두려워 떨고(三尺誓天山河動色),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도다(一揮掃蕩血染山河).’ 이 같은 문구가 새겨진 한 쌍의 장검(長劍) 앞에 서자, 영화 ‘노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긴 칼을 옆에 차고,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직접 북을 치던 이순신. ‘이 원수를 무찌를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죽는다 한들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라는 그의 간절한 기도는 단순한 승리에 대한 염원이 아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항구적인 평화를 향한 바람이 담긴 절박한 외침이다.



400년 지나도 이순신 찾는 이유

출구를 나서기 직전 마주한 영상이 발걸음을 붙들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무수히 적힌 이름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전투를 마친 충무공이 임금에게 올린 장계 속 명단이다. 놀랍게도 각 장계에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고 격군과 노비 등 공이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도 빼먹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4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끊임없이 그를 호출하는 이유 아닐까. 단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 부당한 현실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파할 줄 알았던 ‘인간됨’ 말이다. ‘진짜 이순신’의 얼굴은 박제된 초상화 속이 아니라,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하고 지키려 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이름’들 사이에 숨어 있는 것 아닐까.

이순신 영화 '한산'과 '노량'의 공동 각본을 쓴 윤홍기 작가. 사진 윤홍기
윤홍기=시나리오 작가 겸 소설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졸업. 영화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일곱 번째 배심원』으로 추미스 소설 공모전 대상, ‘한산’으로 춘사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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