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에서 시설장 A씨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경찰에 알린 40대 여성 김성미(가명)씨의 기억은 또렷했다.
“8년 전, 색동원에 온 처음부터 당했어요….”
김씨는 지난 2016년 색동원에 입소했다. 고령인 데다가 집안 사정으로 발달장애인인 김씨를 24시간 돌볼 수 없었던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딸을 색동원에 보냈다. 타지에 딸을 두고 온 어머니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강화군까지 가 딸을 면회했다. 그러던 2025년 2월 중순쯤, 김씨 어머니는 색동원으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어머니 성미씨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가서 봉합하고 왔어요.”
놀란 김씨의 어머니는 부리나케 색동원으로 달려갔다. 머리 3㎝가 찢어진 딸의 상태를 살펴보고는 색동원 직원들에게 “어쩌다가 이렇게 다쳤냐” “언제 다쳤냐” “왜 다쳤을 때 바로 연락을 안 하고 봉합을 하고 와서야 연락을 했냐”고 따져 물었다.
직원 중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직원들 모습이 의심스러웠던 어머니는 “CCTV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직원들은 “지금은 시설장님이 없어서 CCTV를 보여드릴 수가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시설장은 어디에 있냐”고 묻자 “출장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딸이 언제, 어디서, 왜 다쳤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던 어머니는 곧장 퇴소 의사를 밝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씨는 “엄마 그냥 바람만 쐬고 오자”며 되레 흥분한 어머니를 말렸다고 한다.
딸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네가 다시 시설에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라며 딸을 안심시켰다. 집으로 돌아온 그 날 밤, 어머니는 김씨에게 믿지 못할 말을 들었다.
“원장님이 저를 성폭행했어요. 강제로 가슴을 만지고 성기를 넣었어요.”
어머니는 크게 놀랐지만, 금세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한 뒤 곧바로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변호사도 보통 사건이 아니라고 직감했다. 변호사는 성범죄 등 경찰 수사 경력 풍부한 법무법인 바른의 고은영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다.
고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이 말한 피해 사실이니 과장되거나 일부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김씨 첫 진술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씨 진술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었다. 중증발달장애인이지만 언어 구사 능력도 좋았다. A씨에게 성폭행당한 장소뿐만 아니라 그 당시 했던 말과 행위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A씨가 언제부터 그랬냐”는 질문에 “처음 색동원에 왔을 때부터 그랬다”고 대답했다.
허벅지와 엉덩이 부분에 생긴 상흔도 보였다. 단순히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생길 수 없는 상처였다. 고 변호사 눈에는 누군가에게 강제로 성행위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상처로 보였다. 진술의 구체성과 몸의 상흔 등을 봤을 때 김씨 진술대로 장기간 성폭행 당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변호사은 사건을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A씨의 이력이 걸렸다. 인천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복지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고 변호사는 21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A씨가 지역 사회 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일선 경찰서에서는 공정한 수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며 “관할 수사기관을 배제하고, 서울경찰청에 직접 첩보를 제공해 지자체와의 유착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고 노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경찰에 가서도 김씨 진술을 같았다.
“원장님이 칼을 들이밀면서 엄마한테 말하면 죽여버린다고 했어요. 성관계를 안 하려고 하면 밥을 안 준다고도 했어요.”
경찰 수사관들도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경찰은 본격적인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고, 김씨같은 성폭행 피해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경찰은 A씨의 혐의점을 포착해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간·강제추행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수사 착수 4개월여 만인 지난해 9월 24일 색동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현재까지 입소자 중 4명을 성폭행 피해자로 특정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인천 강화군 장애인 거주시설(색동원) 입소자 심층조사 보고서’엔 조사에 참여한 장애인 19명이 A씨에게 성폭행 등을 당했다는 내용과 더불어, 시설 관계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진술도 담겼다.
고 변호사는 “여러 진술이나 증거를 경찰이 수집했다면 구속 수사로 전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사안이 매우 중대하고, 도주 우려와 증거 인멸 우려가 있는 만큼 구속 수사로 전환해 피해자를 더 특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날 경찰에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편 A씨는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연락에 답을 하지 않았다.
※위 내용은 피해자의 변호사의 증언, 인천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색동원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의 조사 내용, 입소자 심층조서 보고서를 토대로 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