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들, 쿡 이사 혐의·해임 필요성·절차적 정당성에 두루 의문 제기
파월·버냉키도 '응원' 참석…트럼프의 '연준 공격' 정당성 가를 시험대
美대법원 '연준 이사 해임' 공개변론…"트럼프 패소 유력" 관측(종합)
대법관들, 쿡 이사 혐의·해임 필요성·절차적 정당성에 두루 의문 제기
파월·버냉키도 '응원' 참석…트럼프의 '연준 공격' 정당성 가를 시험대
(워싱턴=연합뉴스) 홍정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사 쿡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를 해임한 사건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공개 구두변론이 21일(현지시간) 진행됐다.
대통령이 임기 14년의 연준 이사를 해임한 전례 없는 사건이다.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 만에 종료된 이날 변론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쿡 이사의 해임 사유가 된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가 입증됐는지,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사유로 연준 이사를 해임한 것이 권한 남용인지, 그리고 연준의 중요한 기능에 비춰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됐는지다.
쿡 이사는 애틀랜타의 부동산을 사면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때 서류에 '주거용'으로 적었는데, 이게 사실과 달라 사기를 저질렀다는 게 미 주택금융청이 그녀를 수사 의뢰한 요지다.
다만, 이는 사실관계에 다툼이 있다. 쿡 이사 측은 부동산 목적이 '휴가용'이라고 적은 대출 예상 견적서를 제출하면서 대출 서류의 표기는 '단순 실수'였다는 입장을 보였다.
"쿡 이사가 해임될 만큼의 기만 행위를 했느냐"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질문에 정부를 대리한 존 사우어 법무부 송무차관은 "기만이거나 최소한 중대한 과실"이라면서 "금융감독기관 인사가 금융 거래에서 기만이나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다면, 그건 해임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관들은 이에 회의적이었다. 대출이 이뤄진 시점이 연준 이사 취임(2022년) 전인 2021년이며, 연준 이사의 직무와 무관한 행위를 이유로 해임하는 게 정당한지 의문이 제기됐다.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과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이런 점을 지적하면서 "상점 절도, 좀도둑, 가정폭력 같은 건 어떤가"(배럿 대법관)라고 물었다.
연준법상 연준 이사 해임은 '상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쿡 이사를 해임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주택담보대출 신청서에서 실수한 것이 중대한 과실에 해당하느냐"면서 "(연준 같은 기관은) 독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문제를 너무 성급하고 충분한 숙고 없이 결정하면 그 독립성이 훼손된다"고 말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은 "이런 해임이 허용된다면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하거나 붕괴할 것"이라면서 이는 앞으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연준 인사들의 해임을 시도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우려했다.
쿡 이사 해임 과정에 수정헌법 5조의 절차적 권리가 제대로 지켜졌는지도 논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인 트루스소셜에 쿡 이사가 사기를 저질렀다는 글을 올린 지 5일 만에 해임을 통보했다.
'5일이면 방어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이었다는 게 사우어 차관의 주장이지만, 대법관들은 SNS 글에 법적 효력이 없으며, 특히 연준처럼 중요한 기관의 고위직을 지나치게 서둘러서 해임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1·2심에서 패소하자 쿡 이사의 직위를 유지한 하급심 결정을 정지시켜달라는, 즉 쿡 이사 해임을 대법원 심리 기간만이라도 유효로 해달라는 '긴급 항소'를 제기했다. 이날 변론은 이를 다루기 위해 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쿡이 직을 유지하도록 두는 것이 대통령이나 국민에게 얼마나 해가 된다고 믿어야 하느냐"며 "쿡이 즉각적인 위협이라는 증거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변론이 종료된 뒤 대다수 미 언론은 "대법원이 쿡 이사 해임을 기각할 태세"(뉴욕타임스), "트럼프의 시도가 기각되는 쪽으로 기울어"(월스트리트저널), "대법관들이 쿡 이사 해임에 회의적"(CNN)이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앞서 쿡 이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해임 통보해 이의를 제기한 사건에서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 사유로 밝힌 사기 혐의가 쿡 이사가 연준 이사를 맡기 전에 발생한 일이기에 충분한 해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같은 달 2심 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쿡 이사에게 제기한 혐의에 정식으로 대응할 기회를 주지 않아 쿡 이사의 정당한 절차적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연준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 조치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대법원의 판결 결과에 따라 그 정당성이 시험대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최초의 흑인 여성으로 연준 이사에 임명된 쿡 이사의 임기는 2038년 1월까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거나 금리 인하에 적극적인 인사들로 연준의 인적 구성을 바꾸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을 향해 신속하고 대폭적인 금리 인하를 거듭 촉구해왔으며, 최근에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해 연준 청사 개보수 예산 초과를 이유로 미 법무부가 수사를 시작한 바 있다.
파월 의장과 쿡 이사 모두 자신을 향한 수사와 해임은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쿡 이사는 변론 종결 후 성명에서 이 사건은 연준이 "증거와 독립적 판단에 따라 금리를 정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변론에는 파월 의장과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도 '응원'차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앨런 그린스펀,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전직 연준의장과 로버트 루빈, 래리 서머스, 행크 폴슨, 잭 류, 티모시 가이트너 등 전직 재무장관은 지난해 9월 "우리 경제의 장기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조치"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쿡 이사 해임 시도를 막아달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