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중 ‘코스피 5000’은 숫자 자체로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하지만 시장의 고민은 오히려 지금부터다. 새해 들어 대형 수출주 중심으로 5000까지 빠르게 상승한 만큼, 반도체 등 특정 업종에 치우친 성적표라는 한계가 있다.
22일 국내 증시 전문가 4인은 “5000 달성 자체보다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가치투자의 원조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대표적인 ‘닥터 둠(비관론자)’로 꼽히는 김영익 전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증권사 리서치 책임자인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과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센터장의 공통된 진단이다.
①5000시대 평가=“실적이 끌어올렸다” VS “기대가 너무 앞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 투톱’이 유례없는 상승장을 주도했다. 올해 실적 전망도 빠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 박희찬 센터장은 “최근 한 달 사이 국내 기업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50조~100조원가량 추가로 늘었는데, 지난해 코스피 전체 영업이익이 약 300조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주가가 이를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김학균 센터장도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약 1000포인트를 끌어올렸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박 센터장은 또 “개인 투자자 중심으로 ‘머니 무브’가 강하게 작동하면서, 현대차처럼 테마성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례 없는 상승 속도에 대한 경계도 만만치 않다. 김 교수는 “실제 경제 상황보다 기대가 과도하게 반영된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인공지능(AI) 혁명 기대,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 등 제도 변화가 주가를 끌어올린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명목 경제성장률(GDP)과 광의 통화(M2) 대비 코스피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실제 수출 실적과 통화량 증가 속도와 비교하면 과한 성적표라는 의미다.
이채원 의장도 지수의 질을 지적했다. 그는 “코스피 3300선까지는 전 종목이 고르게 올랐고, 시장 친화적 정책 효과가 반영된 것도 여기까지”라며 “이후 상승은 반도체가 거의 혼자 끌어 올린 구조”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대차는 실적이 아니라, 로봇 사업 진출 소식으로 급등하는 등 과열된 부분이 있다”며 “실적이 나빠지면 지수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②향후 주가 전망=“더 갈 여지 있다” VS “6000보다 4000 가능성”
전망에 대해서는 온도 차가 분명했다. 박 센터장은 “반도체ㆍ조선ㆍ전력기기 등 핵심 업종의 이익 증가 흐름이 이어진다면 추가 상승 여지는 있다”고 봤다. 다만 “AI 열풍 속에서 회사채 발행과 자금 조달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점은 경계해야 할 변수”라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반도체는 부침이 심한 비즈니스”라며, 업종의 특성을 가장 큰 변수로 꼽았다. 그는 “반도체는 돈을 많이 벌어도 다시 설비 투자로 들어가는 산업”이라며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가고, 그때마다 주가는 크게 흔들려 왔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숫자보다 ‘정착’을 강조했다. 그는 “5000이든 4000이든, 중요한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가 해결돼 이 지수대에 정착할 수 있는지”라며 “테마나 장세에 휩쓸리지 말고, 왜 주가가 오르는지를 냉정하게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명목 GDP 대비 비율 등을 고려하면 다음은 6000이 아니라 4000일 가능성이 더 높다”며 “산이 높으면 내려오는 계곡(조정)도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③과제는=“흔들려도 버틸 수 있는 시장 만들어야”
결국은 지수가 흔들릴 때도 투자자가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김 센터장은 “기업이 의미 있는 배당을 주면, 나쁜 시기에도 배당을 가지고 버틸 수 있고, 그것이 장기 투자를 이끄는 힘”이라며 “지배구조 개선으로 배당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5000선 달성을 계기로 기업 친화적, 자본시장 친화적인 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부 주도로 이뤄지는 3차 상법 개정 속도전, 노란봉투법 등 재계의 우려도 균형감 있게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의장은 “배당보다 기업 매각이 세 부담이 더 낮은 구조적 불균형 문제,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능력이 있어도 승계가 어려운 문제 등 구조적 세제 개선까지 함께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ㆍ벤처기업 중심 코스닥의 만성적인 소외도 문제다. 이 의장은 “미국의 나스닥은 프리미엄 시장으로 혁신적ㆍ진취적 기업이 아니면 받아주지 않는다”며 “코스닥의 위상을 높이려면 세제 혜택 등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코스피 종목 수가 800개, 과거 일본 자스닥도 700개 정도 되는데, 코스닥은 1800개로 과도하게 많아 정보의 비대칭성이나 묻지마 투자도 심하다”며 “특례상장한 기업들이 몇 개나 성장했는지 등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