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제주 4·3사건 진압 작전을 이끈 고(故) 박진경 대령에게 국가 유공자 증서를 발급한 것과 관련해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에 올려 적절성을 검토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박 대령의 손자가 유공자 등록을 요청했는데, 손자는 원래 신청 자격이 없으니 보훈심사위에 부의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사실상 국가 유공자 취소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지난 2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가유공자 지정 신청은 직계자녀와 부모만 가능한데, 박 대령의 경우 손자가 신청해 애초에 신청 자격이 없었다”며 “손자에게는 신청 자격이 없는 만큼 일단 그 절차를 취소하고, 보훈심사위에 안건을 올려 이 문제를 다시 심의받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라 대상자의 직계자식과 부모만 국가 유공자 신청을 할 수 있게 돼 있으므로 손자가 신청해 국가 유공자 발급 증서가 나온 박 대령의 경우는 절차에 맞지 않다는 취지다.
박 대령은 1948년 5월 제주에서 진압 작전을 이끌다 남로당 세포로 활동하던 부하에 의해 암살된 뒤 전몰군경(戰歿軍警)으로 인정받아 현충원에 안장됐다. 박 대령 유족은 지난 10월 20일 무공훈장 수훈 등을 근거로 보훈부에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해달라고 신청했다. 같은 날 보훈부 서울보훈지청은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4·3 사건 희생자 유가족과 단체들은 그가 강경진압을 이끈 “학살의 주범”이라는 입장이다. 박 대령 측과 일부 단체는 “양민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보훈부는 박 대령 건을 보훈심사위에 부의할 방침이다. 국가유공자법 6조 5항은 신청 대상자가 없어 등록신청을 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와 의결을 거쳐 국가유공자로 기록하고 예우 및 관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상설협의체인 보훈심사위는 10명 안팎으로 구성된 분과위원회에서 사안을 논의한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본회의를 연다. 본회의는 전원합의 방식이지만 의견이 엇갈릴 경우 의결을 진행한다.
이를 두고 박 대령에 대한 국가 유공자 지정 취소를 이미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조치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4일 박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된 경위를 살펴보고 이를 취소할 수 있는지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다음 날 보훈부는 “관련 법률과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보훈부는 박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하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지방보훈청에 대한 감사도 진행했다.
박 대령의 양손자인 박철균 육군 예비역 준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진경 대령은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이라며 “법 취지에 맞게 충분히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분이다”라고 말했다. 박진경 대령 유족회 박홍균 사무총장은 “박 대령이 유공자로 지정돼도 손자는 혜택을 받지 않는다. 추도비를 훼손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유공자 신청을 한 것”이라며 “손자라서 결격 사유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 논리라면 제주 4.3 관련 국가유공자를 전수조사해야 한다”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