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 코스피가 4000선을 밟고 22일 장중 5000선까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이다. 코스피는 1983년 출범 이후 ‘1000의 계단’을 밟을 때마다 긴 시간이 필요했다. 1000까지 6년, 2000까지 18년, 3000까지 13년, 4000까지 5년이 걸렸다. 5000까지 오는 데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례적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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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금융·무역 ‘트로이카’로 1000 돌파
한국 증권시장이 처음 개설된 건 1956년, 상장회사가 12개에 불과했다. 한국거래소(당시 대한증권거래소)가 주가지수 산출 방식을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시가총액 방식으로 하게 된 건 1983년 1월 4일이다. 이날을 코스피 출범일로 본다. 이 때로부터 3년 전인 1980년 1월 4일 시가총액 기준(100)으로 추산한 1983년 코스피의 첫 종가는 122.52였다.
본격적인 코스피 상승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트로이카’라고 불리던 건설·금융·무역 3개 업종이 3저(저금리·저유가·저환율) 호황을 발판 삼아 증시를 이끌었다. 1989년 3월 31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1000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1992년 외국인에게 주식을 전면 개방한 이후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며 지수는 1998년 6월 280선까지 추락했다.
1990년대 말 닷컴(인터넷) 열풍에 힘입어 코스피는 1000선을 회복했지만, 세계적인 닷컴 거품 붕괴에 건설 경기 과열 후유증 등이 겹치면서 다시 추락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다음 날에는 지수가 하루 만에 12.02% 폭락, 400대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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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닷컴거품 이겨낸 ‘적립식 펀드’ 붐
2000년대 중반 코스피는 적립식 펀드 붐을 타고 다시 살아났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바이코리아펀드’ ‘박현주 펀드’ 등 적립식 펀드 열풍으로 가계 자금이 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코스피는 2007년 7월 25일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덮치면서 코스피는 10월 말 892까지 밀렸다.
2010년대 들어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의 활약이 코스피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한국과 중국·베트남 등 아시아 신흥시장 전반으로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국내외 경제 환경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때 쓴 사상 최고치(2011년 5월 2일 2228.96)는 6년간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코스피는 2000~2200선에 갇힌 ‘박스피’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유럽 재정위기 등의 여파로 끝없이 밀려나면서다. 2017년 10월 30일 2500선을 겨우 넘었지만,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무역전쟁 여파라는 악재가 계속해서 코스피 상승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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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 운동으로 3000 돌파
‘코스피 3000’의 주역은 외국인도 기관도 아닌 개인, 이른바 ‘동학개미’(한국주식 개인 투자자)였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충격으로 10년 만에 1500선을 깨고 1457.64(3월 19일)까지 내려앉았지만, 코스피는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V자’를 그리며 반등했다. 2021년 1월 6일 그렇게 코스피 3000 시대가 열렸다.
그러다 2024년 말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속 코스피는 다시 2000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4월 9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충격으로 저점(2293.70)을 찍은 코스피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미 관세 협상이 최종 타결될 거란 기대 속에 다시 상승 기류를 탔다. 10월 27일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4000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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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이끈 꿈의 ‘오천피’
이후 5000 돌파까지 이끈 주역을 하나만 꼽자면 반도체 기업이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인공지능(AI) 수요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반도체 가격이 급증하면서 기업 수익을 밀어 올렸고, 그 이익이 주가로 빠르게 전이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년간 약 189%, 242% 상승했다. 두 기업은 시가총액 1·2위이면서 22일 기준 코스피 상장 시가총액의 약 35%를 차지한다. 4000에서 5000까지 오는 87일간 두 기업이 끌어올린 시가총액은 같은 기간 코스피 시가총액 상승분의 약 59%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