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퇴직연금 기금화’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며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퇴직연금 기금화에 반대하는 국민 청원이 7일 만에 3900여 명의 동의를 얻는 등 정책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상당하다는 점이 있다. 퇴직연금 기금화의 구체적인 추진 방향은 이르면 이달 말 퇴직연금 노사정 TF 합의를 거쳐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정부 관계자와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정흥준 한국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제도를 둘러싼 우려와 쟁점을 짚어봤다.
Q : 퇴직연금 기금화 무엇이고, 왜 하려 하나.
A : 퇴직연금 기금화는 기업·개인이 각각 운용하던 퇴직연금을 큰 기금 형태로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제도 개편이다. 정부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려 국민의 노후 보장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기금화로 규모의 경제가 되면 경쟁력 있는 투자가 가능해지고, 전문가의 운용으로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 8% 이상의 수익률을 내는 국민연금이나 푸른씨앗 같은 기금형 연금을 모범사례로 든다.
Q : 기금화의 단점은 없나?
A : 하지만 꼭 퇴직연금 기금화가 수익률 제고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수탁자가 2000억엔 규모의 퇴직연금을 부실 운용하고 손실을 은폐해 근로자 88만명의 퇴직금을 날린 일본의 ‘AIJ 사태’가 대표적이다. 투자 결정 주체(기금)와 수익자가 다른 만큼 분쟁 가능성도 크다. 국민연금과 달리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은 운용 손실이 발생하면 퇴직금이 줄어드는 만큼 노후 자산의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Q : 내 퇴직연금 무조건 '기금화' 되는 건가.
A :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내 퇴직금을 내가 직접 굴리고 싶은데,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는 인식이다. 퇴직연금은 크게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퇴직연금 노사정 TF’는 확정기여형(DC)만 대상으로 기금화 도입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TF 관계자는 “퇴직금 액수가 이미 확정돼 있는 DB형은 수익률이 높아져도 그 이익이 가입자에게 직접 돌아가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수익률이 근로자의 노후자산에 영향을 미치는 DC형만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용어사전>퇴직연금 제도(DB·DC형)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퇴직한 뒤에도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재직 기간 동안 미리 적립해 두는 노후자산이다. 퇴직금이 어떻게 정해지고, 누가 운용 책임을 지느냐에 따라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으로 나뉜다.
DB형은 퇴직 시 받을 급여가 사전에 확정되는 방식으로, 통상 퇴직 직전 평균임금 3개월분 × 근속연수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회사가 적립금 운용 책임을 지기 때문에 근로자는 운용 성과와 무관하게 약정된 퇴직급여를 받지만, 수익률이 높아져도 추가 이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고, 근로자가 이를 직접 운용하는 방식이다. 운용 성과에 따라 퇴직급여가 달라지며, 수익이 늘 수 있는 만큼 손실 위험도 근로자가 부담한다.
」
Q : 그럼 DC형 가입자면 무조건 기금화를 해야하나.
TF에서는 기존의 ‘계약형 퇴직연금’ 제도는 유지한 채, 선택지로서 기금형을 추가 도입하는 병존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라 DB형과 DC-계약형(근로자가 스스로 운용)에 더해 DC-기금형까지 선택지가 확대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의사결정 방식은 현행 퇴직급여제도와 마찬가지로 사업장 단위에서 노조나 근로자대표가 결정하는 구조다.
노조나 근로자대표가 ‘DC-기금형’만을 선택하면 사실상 강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근로자 전체의 수익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선택지를 일방적으로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Q : 내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이 굴리는 건가.
퇴직연금 기금화가 곧바로 ‘국민연금 운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셋·국민은행 등 기존 민간 연금 사업자들도 운용 주체로 참여하는 방향이라는 큰 틀은 마련돼 있다. 다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비영리법인 형태로 참여할지, 영리법인으로 참여할지, 혹은 연합형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이 될지 등 구체적인 구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실제 국회에 다양한 입법안이 제출돼 있다. 대기업이 ‘비영리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국민연금공단도 사업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한정애 의원안)과, ‘퇴직연금기금전문운용사’를 신설해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기관이 퇴직연금기금을 운용하도록 하는 방안(안도걸 의원안) 등이다.
Q : 퇴직연금 기금화 되면 외환시장 방어에 내 퇴직금이 쓰인다?
A : 이러한 우려의 배경에는 최근 국민연금이 고환율 국면에서 환헤지 전략을 조정하는 등 이른바 ‘환율 방어’에 동원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쌓인 국민적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약 40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이 한꺼번에 기금화되고, 운용 주체가 국민연금 단일 사업자가 되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검토 대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처럼 450조 원 규모의 자금을 하나의 단일 기금으로 운용하는 구조라면 모르겠지만 퇴직연금을 그런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지나친 우려라고 본다"고 짚었다.
다만 여전히 ‘관치금융’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민간 사업자들이 운용을 맡더라도 정부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한 익명의 전문가는 “퇴직금이 분산돼 있을 때보다 대규모 기금으로 통합될 경우 외부의 영향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며 “근로자의 수익률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이해관계 충돌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국민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이 매도에 나설 국내 주식 물량을 퇴직연금이 떠안게 되거나, 채권시장을 떠받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짙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금화라는 선택지가 추가되는 것 자체를 근로자에게 불리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사회적 대화와 충분한 설명을 통해 우려를 해소하고, 결국 그 책임이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만큼 근로자의 선택권이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