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현지시간) 오전 독일 드레스덴. 지휘자 정명훈이 오케스트라의 연습을 잠시 멈췄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교향곡 2악장의 유명한 시작 부분이었다.
“저는 이 음악에서 여기에 떠 있는 영혼을 떠올립니다.” 그는 지휘봉으로 허공에 작은 원을 반복해서 그렸다. “어떤 유령과 같은 영혼이 이 음악을 듣고 있다고 상상하는 거죠.”
478년 역사의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정명훈은 이날 저녁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리허설은 콘서트홀인 문화궁전(Kulturpalast)의 무대에서 열렸고 정명훈은 오케스트라에게 상상의 폭을 넓히는 주문을 던지며 무대 연습을 이끌어 갔다. “이 부분은 영혼이면서 동시에 일렁이는 불과도 같습니다. 커다란 불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떠올라요.” 그가 지휘봉을 다시 들자 같은 부분 연주가 시작됐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함께 한 시간은 길다. 2001년 함께 처음으로 연주해 올해로 25년이 됐다.
이날 연습 중 정명훈은 “당신들 오케스트라는 수많은 독일 오케스트라 중에서도 내가 독일어로 리허설하는 유일한 악단”이라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연주하기 까다로운 부분에서 “나는 이런 부분에서 지휘 대신 기도를 한다”며 두 손을 모으자 단원들의 폭소가 터졌다. 앙코르 곡을 연습할 때는 “지휘 없이도 한 번에 소리를 맞춰서 나올 정도가 돼야 한다”며 단원들에게 등이 보이도록 돌아서서 지휘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단원들이 큰 소리로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단원들도 지휘자를 가깝게 여긴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8년 차 호른 연주자인 마리-루이즈 칼레는 정명훈을 두고 “우리 음악가들과 함께한다는 믿음을 주는 지휘자”라며 “그런 리더십은 음악가들로부터 최고의 연주를 끌어낸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8시에 시작된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특별한 친밀감을 확인시켰다. 정명훈이 평소 “독일 오케스트라의 정석을 보여준다”라고 평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현악기군의 소리는 집중력 있게 모였다. 특히 극적인 감정을 만드는 부분에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마음이 같은 곳으로 향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든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연거푸 받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며 지휘자를 바라봤다. 찬사를 지휘자에게 양보한다는 뜻이었다.
티켓이 매진된 이날 공연의 협연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었다. 최근 즐겨 연주하는 슈만의 협주곡을 고른 그는 낭만적인 해석으로 작품의 정수를 전달했다. 슈만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인 이 곡은 드레스덴에서 1845년 초연된 기록이 있다. 오케스트라가 맨 앞에 연주한 ‘마탄의 사수’ 서곡은 드레스덴 오페라 극장을 대표하는 작곡가인 베버의 작품이다. 드레스덴의 상징적인 음악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었다.
정명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임윤찬은 같은 프로그램으로 한국 투어를 시작한다. 2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중앙음악콘서트를 시작으로 28일 롯데콘서트홀, 30일 평택아트센터, 31일과 다음 달 1일에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