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는 이제 특별한 날의 음식이 아닌, 집에서 직접 구워 즐기는 일상 속 메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한 점을 만들기 위해선 고기 선택부터 두께, 조리법까지 고려할 것이 많죠. 20년 경력의 스테이크 전문가 김광중 셰프가〈스테이크 가이드〉를 통해 제대로 굽고 즐기는 법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고기 맛을 좌우하는 숙성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스테이크 가이드] 요즘 사람들이 ‘불맛’에 열광하는 이유
최근 스테이크 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조리 방식입니다. 기술은 더 정교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가장 원초적인 도구로 돌아가고 있죠. 바로 숯입니다. 초프리미엄 스테이크하우스일수록 차콜이나 파이어 그릴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흐름은 요리 프로그램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에서 유독 인상 깊었던 인물 역시 ‘바베큐연구소장’이었습니다. 복잡한 장치보다 불과 고기를 다루는 기술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셰프였죠. 남들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방식으로, 숯과 불이라는 도구를 자신만의 기술로 풀어냈습니다. 고기와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제게 이 장면은 단순한 캐릭터 소개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왜 지금, 다시 숯일까.
답은 스테이크 조리 방식의 변화에 있습니다. 스테이크의 조리 방식은 기술 발달과 함께 그 시기의 유행과 문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 왔습니다. 정교한 온도 제어가 가능한 가스 그릴, 효율과 안정성을 앞세운 전기 그릴, 그리고 자동화된 오븐까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리는 점점 편리해졌고, 결과는 점점 비슷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테이크는 셰프의 고유한 영역이라기보다, 매뉴얼에 맞춰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반복 생산하는 메뉴에 가까워졌죠.
그러다 보니 소비자의 경험 역시 점점 비슷해졌고, 자연스럽게 ‘다음 차이’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를 다니며 느낀 점도 같았습니다. 가격이 높은 스테이크하우스일수록 차콜이나 파이어 그릴 같은 조리 방식을 통해 차별화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숙성법이나 고기 등급 같은 1차적인 요소를 넘어, 조리 방식 자체로 맛의 방향을 설계하며 “왜 여기여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었죠. 조리 방식으로 가치를 설명하는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원초적인 도구인 숯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불맛’은 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다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왜 다시 차콜 스테이크를 선택할까요. 이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라기보다, 미식 소비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차콜 스테이크의 매력을 흔히 불맛이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하나의 향이 아닙니다. 숯이 연소되며 발생하는 휘발성 향 성분, 고기 지방이 불 위로 떨어지며 생기는 연기, 고기 표면에서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이 동시에 작동하며 만들어지는 복합적인 풍미 구조에 가깝습니다.
물론 가스 그릴이나 팬에서도 마이야르 반응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숯불 특유의 연기와 고온의 복사열이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향까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차콜 스테이크의 풍미는 더 선명하고, 동시에 오래 남습니다. 입 안에서 끝나지 않고 기억으로 이어지는 이유입니다.
차콜 조리는 고온과 단시간의 대비를 만든다 차콜 조리의 핵심은 순간의 높은 화력입니다. 가스 그릴이 열을 매개로 조리한다면, 숯불은 직접적인 열로 고기를 다룹니다. 이로 인해 아주 짧은 시간에 강한 열이 전달되고, 고기 표면은 빠르게 단단한 크러스트를 형성합니다. 내부는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익게 되죠.
어떤 셰프들은 짧은 시간에 겉면을 완성한 뒤 뜨거운 그릇에 담아 손님이 식사하는 동안 내부 온도를 완성합니다. 반면 더 세밀한 셰프들은 상온의 그릇을 사용해 30~40분에 걸쳐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방식에 따라 만족도는 갈릴 수 있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겉과 속의 대비, 바삭한 표면과 촉촉한 중심부가 스테이크 경험의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이 대비가 또렷할수록 소비자는 ‘잘 구운 스테이크’를 직관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차콜은 기술을 대신 판단해주지 않는다 가스나 전기 조리는 일정한 결과를 만들어주는 장치가 많습니다. 디지털 온도 설정만으로도 실패 확률을 크게 낮출 수 있죠. 반면 숯불은 매 순간 변하고, 사람이 이를 알아야 합니다. 숯의 상태, 불의 분포, 공기의 흐름, 고기의 위치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캠핑에서 스테이크를 보기 좋게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차콜 스테이크는 셰프의 숙련도가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불을 읽고, 고기의 상태를 판단하고, 타이밍을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결과로 나타납니다. 소비자는 이를 직관적으로 알아보고 레스토랑의 수준을 평가하게 되죠. 평가가 일상이 돼버린 요즘, 차콜은 가장 솔직한 조리 방식입니다.
자연스러움은 프리미엄이 되는 기준이다 요즘 소비자는 화려한 플레이팅만큼이나 정직한 조리에 반응합니다. 인공적인 연출이나 과도한 소스, 설명이 필요한 장치보다 재료 자체가 가진 힘과 쿠킹 테크닉을 선호하죠. 차콜 스테이크는 이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숯불은 조리 과정을 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기와 불꽃, 그릴 자국은 조리의 흔적이자 결과입니다.
라스베이거스를 가보면 카지노 호텔 아래 위치한 고급 스테이크하우스들에서, 셰프가 연기 속에서 땀을 흘리며 고기를 굽는 장면을 손님이 바로 앞에서 보게 됩니다. 노출된 과정은 오히려 신뢰를 만들고, ‘무언가를 덧붙이지 않았다’는 인식이 곧 프리미엄으로 전환됩니다.
차콜 스테이크는 경험을 포함한 음식이다 차콜 스테이크는 맛뿐 아니라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불 위에서 올라오는 연기, 검붉게 형성된 크러스트, 칼을 대는 순간 드러나는 단면. 시각과 후각, 청각이 먼저 작동하고, 마지막에 미각이 완성됩니다. 아직은 소비자가 크러스트나 마이야르 반응을 인식하는 단계일지라도, 구워지는 과정 자체가 경험으로 축적됩니다.
SNS 시대의 미식 소비는 이미 접시 위를 넘어섰습니다. 차콜 스테이크는 ‘먹는 음식’이면서 동시에 ‘공유하고 싶은 장면’입니다. 소비자는 그 장면을 통해 경험을 소유하고, 브랜드는 그 경험으로 기억됩니다.
결국, 차콜 스테이크는 선택의 문제다 빠르고 안정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하지만 본질에 가까운 방식을 선택하는 것. 이는 조리 과정을 단순화하기보다 셰프의 역할을 다시 전면에 세우는 선택입니다. 사람의 본능 중 하나인 식욕, 그리고 더 나은 경험을 향한 욕망이 존재하는 한, 셰프의 테크닉을 직접 체감하는 차콜 조리는 앞으로도 브랜드 간 격차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