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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미국식 예외 주장할 수 있다" vs "양안 군사 행동 문턱 더 높아졌다"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6.01.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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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리포트|중국 상륙 후보지 대만 서부 ‘레드 비치’ 해안을 가다

중국, 군사 위협에서 국제 체제와 규범에 대한 신뢰 교란으로 무게중심 이동
유사시 주한미군 이동 여부가 한국 사회 분열시킬 인지전 소재로 활용될 수도

2023년 대만과 필리핀 사이 바시 해협을 통과하는 중국 항모 산둥함을 관측하는 대만 함정 승무원. [사진 대만 국방부 트위터]
“위이이잉~ 위이이잉~.”

지난여름, 대만 타오위안 공항 입국장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공기를 찢는 경보음과 함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지진 경보를 떠올렸다. 대만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휴대전화에 찍힌 문구는 전혀 다른 공포를 불러왔다.

‘적으로부터 미사일 공습.’

단 몇 초였지만 머릿속은 순식간에 하얘졌다. 전쟁이 시작된 것일까, 이 섬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것일까. 곧 이어 영어와 중국어로 ‘훈련(drill)’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지만, 이미 몸은 굳어 있었다. 대만 사회가 일상처럼 견뎌야 하는 전쟁의 공포가 어떤 감각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대만 당국은 이 훈련을 ‘런싱(韌性·회복)훈련’이라 불렀다. 강한 충격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사회가 붕괴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 훈련이다. 중국이 위협하는 양안(兩岸) 전쟁이 최악의 형태로 현실화될 경우를 상정한 대비였다. 사이렌은 연습이었지만, 공포는 연습이 아니었다. 이 섬에서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전쟁을 상정하며 살아가는 삶은 이미 현실이다.

대만에서 전쟁의 공포는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만성적 사회 스트레스다. 경보가 늘 울리는 건 아니지만, 중국의 침공 가능성을 둘러싼 계산은 일상처럼 이어진다. 이런 대만 사회에 카리브해 연안에서 벌어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은 단순한 중남미 뉴스가 아니었다. 미국이 현직 국가 지도자를 직접 겨냥해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대만에 즉각적인 긴장감을 불러왔다. 이 사건은 대만해협과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전략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행동은 단순한 인권 문제나 범죄 수사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계산의 결과물로 해석됐다. 특히 중국의 행보에 민감한 대만에서는 이 사건을 미국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였다. 미국이 외교적 수사에 머무르지 않고, 필요하다면 주권 국가의 최고 권력 핵심을 직접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대만 사회에는 안도와 불안이 동시에 퍼졌다. 미국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은 억지력으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국제 규범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번 사건은 트럼프 외교·안보 노선의 실체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외에서는 이를 ‘먼로주의의 부활’로 해석하며,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자국의 확고한 세력권으로 재확인한 사건으로 본다. 실제로 미국은 남·북미 전반에 걸쳐 자국의 영향력과 개입 의지를 명확히 투사해왔다. 중요한 점은, 그 과정에서 국제 규범과 절차가 더 이상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2022년 대만해협을 관할하는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 전구가 SNS에 올린 훈련 동영상의 한 장면. [사진 웨이보 캡처]



‘대만 문제는 중국 내정’ 방패에 온 균열

이 사건을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계산은 더 복잡해진다. 중국은 그동안 ‘내정 불간섭’과 ‘주권 존중’을 국제정치의 핵심 원칙으로 강조해왔다. 이는 단순한 규범적 주장이라기보다 대만 문제를 외부 개입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한 핵심 논리였다.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는 프레임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방패였다. 그러나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보여준 행동은 이 방패에 균열을 냈다.

대만의 학계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이 국제 규범의 금기 영역을 건드렸다는 데 대체적인 의견이 모인다. 중립 성향의 〈대만연합보〉는 미국이 타국 영토에 들어가 현직 최고 지도자를 체포·이송한 행위는 국제법적으로 정당화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내정 불간섭 규범이 침해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본다.

중국 역시 이 지점에 방어력을 집중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 작전이 국제 규범을 침탈한 불법 행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사건의 불법성에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중국은 사건 직후 유엔에서 강한 비판 입장을 냈다. 쑨 레이 주(駐)유엔 중국대표부 부대표는 사건 직후 유엔에서 강한 비판 입장을 냈다. 쑨 레이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은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무시하고, 베네수엘라의 주권·안보·정당한 권익을 함부로 짓밟았다”면서 “주권 평등, 내정 불간섭,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국제 관계에서의 무력 사용 금지라는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공세에도 불구하고 국제 규범 약화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히려 ‘규범은 강대국이 필요할 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수에 불과하다’는 냉소가 퍼졌다.

이 지점에서 대만 언론과 여론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국제 규범 약화가 중국의 오판 가능성을 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이 더 대담하게 움직일 것이란 주장은 △미국이 국제 규범 준수라는 금기를 먼저 깼고 △그 결과 규범이 약화했고 △중국이 대만 또는 동남중국해에서 관여와 개입 논리를 확장할 정치적 명분을 얻었다는 논리 구조를 짜고 있다. 실제로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미국의 이번 행동이 중국에 ‘우리도 예외를 주장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다른 한쪽에선 정반대의 해석이 나온다. 규범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의 대만 침공 셈법을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이 대만 문제에서 ‘내정’ 프레임을 고수하더라도, 국제정치 현실에서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다는 공포 변수가 추가됐다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은 군사 행동의 문턱을 낮추기보다 오히려 더 신중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 서부 해안에 설치된 상륙 저지용 장애물들. [사진 정용환]



중국이 마주한 ‘불편한 선례’

대만 언론의 논조도 미묘하게 갈린다. 연합보는 내정불간섭은 선언적 규범일 뿐 자동으로 작동하는 안전장치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국제 규범에 기대어 전략을 짜는 것은 위험하며 중국이 규범을 지켜줄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함정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반면 자유시보는 이번 사건을 중국에 ‘가장 나쁜 선례’로 규정한다. 중국이 중시해온 것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가 아니라 국제 여론전을 선점하는 것이었다. 대만 유사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수 없으나 국제 여론을 중국에 유리하게 끌어당겨 미국 사회 내부의 분열을 노리는 포석이다. 그러나 마두로 사건이 이 전제를 흔들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대만 침공을 고려할 때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과의 군사력 격차 그 자체가 아니다. 중국은 장기전과 소모전을 통해 군사적 열세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해왔다.

그러나 국제사회 여론이 중국에 불리하게 기울고, 미국의 개입이 도덕·정치적으로 정당화되는 순간 상황은 뒤집힌다. 마두로 사건에서 미국은 인권 탄압과 부정선거, 국제 범죄 연루 등을 명분으로 군사 행동을 정당화했다.

대만 중앙경찰대학 가오페이산(高佩珊) 교수는 “미국 국내법적 해석이 글로벌 집행 도구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대만 유사시에도 비슷한 서사가 작동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 차원에서 미국이 비슷한 명분을 동원한다면 중국은 외교적으로 방어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중국은 ‘불편한 선례’를 마주한 셈이다.

대만 사회 일각에선 “중국의 확고부동해 보이는 내정불간섭주의는 신성(神聖)을 잃었다”면서, 역설적으로 중국이 이 규범의 복원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불편한 선례로 인한 불안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제 관심은 중국의 향후 대응이다. 동북아시아 역내에서 내정불간섭이 도전을 받을 경우 중국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무력 통일 시나리오는 여전히 극단적인 옵션이다.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끌고 있지만 수십만 상륙군이 150㎞ 대만해협을 건너야 하는 이 방안은 중국 인민해방군과 대만군 간 압도적 전력 격차에도 불구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녹록지 않은 선택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정현욱 박사는 “중국은 평시에 선전 매체와 인터넷을 활용한 인지전(認知戰)을 전개하다가 기회가 포착될 경우 해상 봉쇄나 도서 점령을 시도한다는 구상인데, 베이징이 감당해야 하는 정치·경제·군사적 비용 계산이 의사결정을 제약할 것 ”이라고 분석했다.

2021년 미 7공군의 오산 공군기지에 배치된 정찰기 U-2 드래건 레이디. U-2 정찰기는 주로 북한 정찰 활동을 하지만, 대만 상공 등으로도 출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대만에서의 무제한 소모전 시나리오

대만 침공을 둘러싼 숱한 워게임 결과, 인민해방군 또는 대만을 지원하는 미국의 해양동맹군 한쪽의 일방 승리는 없었다. 무력 통일 옵션은 여전히 손익 계산이 어렵다. 상륙만 해도 그렇다. 상륙은 할 수 있으나 상륙에 성공해 신속 점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자칫 잘못하면 대만섬에서 무제한 소모전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프로젝트 2049 연구소〉, 〈포브스〉, 〈디펜스 포스트〉, 〈유라시안타임스〉 등을 종합한 결과, 인민해방군 상륙군이 상륙을 시도해볼 수 있는 해안은 14개로 제한된다. 해안선이 긴 대만 지형 특성상 상륙 가능지는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14개 해안 일대만 시도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모두 서부 해안에 몰려 있다. 동쪽 해안은 험준한 산악 지형과 바다가 맞닿을 듯 붙어 있어 대규모 상륙군의 기동 가능성은 희박하다.

‘레드 비치(Red Beaches)’로 불리는 14개 해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심과 해안까지의 경사로 인해 상륙함 접근이 가능한 해안 구조가 있다고 분석된 지역이다. 인근에 도로·항만·도시 인프라가 깔려 있어 기동에 유리한 곳이다. 레드 비치의 상륙 잠재 요소는 이게 다다. 뒤집어 보면 상륙 가능한 해변이 14개라는 말은 상륙 전력이 집중돼 대만군의 집중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병참 보급선은 어떤가. 대만해협이라는 거대한 해자는 보급선을 극도로 취약하게 만든다. 시간도 상륙군 편이 아니다. 단기간에 교두보 확보에 실패하면 상륙 작전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이런 위협 요인을 안고 14개 해안을 뜯어보면 대부분 상륙이 용이한 곳이 아니다. 갯벌 아니면 습지 또는 침수되는 저지대이거나 게릴라 방어전에 용이한 도시화한 지역들이다. 갯벌 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전차나 자주포 등 기계화 전력의 침하 위험이 크다. 해안 일대에 도시가 형성된 지역은 상륙과 동시에 시가전에 들어가야 한다. 상륙전은 특히 정치·경제·군사적 목표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상대의 보급선을 끊거나 정치적 충격을 주는 장소 또는 전쟁 지속 능력을 제거하는 지점을 겨냥한다. 이런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지로 중부의 타이중 항구 일대가 거론되는데, 상륙하기 좋은 곳은 방어 역량도 집중 배치된다. 피해를 감수하고 상륙에 성공한다 해도 상륙전은 단발로 끝나는 게 아니다. 지속적 증원과 병참 보급선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따라서 상륙전을 결심하기까지 인민해방군 지도부의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상륙전이 주는 정치적 충격과 함의는 크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 감당해야 할 정치·군사적 비용이 심대하다. 게다가 설사 상륙에 성공한다 해도 점령은 또 다른 문제다. 병참 보급의 제약 속에서 소강전에 빠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상륙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에 앞서 후과를 감당할 수 있느냐 여부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당분간 무력 통일보다 하이브리드전과 인지전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전통적인 전쟁과 달리 하이브리드전은 공격 주체의 공식적 선전포고와 산하를 가르는 전장이 없다. 비군사적 수단을 군사적 수단과 결합해 육해공과 사이버 공간에서 동시다발로 전개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구사하면서 관심을 받았다. 중국은 삼전(三戰) 또는 초한전(超限戰)이라는 개념으로 하이브리드전을 체계화해왔다. 싸우지 않고 상대를 약화시키는 전략이다. 삼전이란 심리전·여론전·법률전을 통해 여론 우위를 선점하고 영향력을 확대해 정치적 승리를 달성하는 개념이다. 초한전이란 수단과 방식에 대한 한계를 뛰어넘어 상대방을 이긴다는 개념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식의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의 유격전을 방불케 하는 접근법이다.

대만 국가안전국(NSB)은 최근 중국의 사이버 부대가 지난해 대만의 핵심 기반시설을 대상으로 하루 평균 263만 건 침입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전년 대비 6% 증가한 규모다. 하루에 일어나고 있는 사이버 공격량이 이 정도다. 집계를 시작한 2023년 대비 약 113% 증가했다. 공격은 디도스와 보안 취약점을 악용하거나 공급망 교란 등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중국이 대만 포위 훈련에 돌입할 당시의 대만 타이베이 시내 전경. 대만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를 일상처럼 견뎌야 한다. [사진 정용환]



중국의 사이버 공격량 일일 263만 건

대만 국립정치대 류푸궈(劉復國) 대만안전연구센터장은 “지금까지 파상적인 중국의 하이브리드전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극복해왔듯이 사회적 회복력의 탄력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마두로 사건 이후 눈에 띄는 변화는 단순한 사이버 공격의 양적 증가가 아니다. 메시지의 방향이 달라졌다. 군사적 공포를 직접 자극하기보다 국제 질서와 규범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서사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사이버 작전 기구의 고강도 인지전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인지전은 심리전·정보전과 달리 프레임을 설정해 목표 대상이 생각하는 것을 통제하는 데서 더 나아가 대상이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 즉 전체 사고 과정을 틀어쥐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심리전과 정보전에서 구사하는 거짓 정보나 사실관계는 적에게 유불리한 판단의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인지전은 마음과 생각을 전장으로 삼기 때문에 스토리 구조를 활용해 같은 편으로 동화시키거나 적어도 상대가 적대감을 갖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쟁이다. 즉, 부전승을 노리는 전략이다.

대만의 안보 관련 연구기관의 관계자는 “베이징이 부족했던 것은 국제 규범이 붕괴하는 선례가 아니라 군사 능력이다. 중국은 전쟁보다 대만 사회의 결속과 판단 능력을 무너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중 성향의 〈중국시보〉는 중국이 마두로 체포 이후에도 대만에 대한 기본 전략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군사훈련, 항공식별구역(ADIZ) 진입, 경제적 압박, 외교적 고립 등 이른바 회색지대 전략은 여전히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문은 ‘이번 사건이 중국으로 하여금 군사 갈등·충돌의 시점과 조건을 더욱 엄격하게 계산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위험이 커졌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는 것이지 목표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해석이다.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이 갖는 취약성

마두로 사건 이후 대만 SNS 플랫폼에서 감지되는 인지전도 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인지전은 공포를 조성하는 군사 위협보다 국제 체제와 규범에 대한 신뢰 교란으로 무게중심이 미묘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만의 정치평론가 양광순(楊光舜)은 “이 사건 이후 두드러진 인지전 3대 서사가 있다”며 “규범은 강대국의 필요 아래 존재하고 우크라이나·중동에 이어 중남미까지 전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미국은 미·중 갈등을 선별적으로 관리할 것, 전쟁이냐 평화냐는 결국 대만이 결정한다는 스토리 라인”이라고 지적했다. ‘규범은 강대국의 필요에 따라 선택된다’, ‘미국은 결국 대만을 버릴 것’, ‘전쟁과 평화의 선택은 대만의 책임’이라는 프레임으로 짜인 인지전 서사의 무한 반복이다. 대만 사회의 결속을 약화하고, 싸울 의지를 꺾기 위한 인지전이다. 중국은 분노하거나 폭주하지 않았다. 대신 계산에 들어갔다. 국제 규범이 흔들리는 세계에서, 대만 사회의 판단 능력과 심리적 저항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비용 대비 가장 효과가 높은 선택이라고 확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타오위안 공항의 사이렌은 훈련이었지만, 대만을 둘러싼 싸움은 이미 마음과 생각의 전장에서 진행 중이다.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는 더는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이 계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만해협은 한국의 해상 교역로와 반도체 공급망, 미·중 전략 경쟁이 겹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은 선택을 미룰 수 있는 완충지대에 서 있지 않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과 깊게 얽힌 경제 파트너라는 이중적 위상은 위기가 현실이 됐을 때 전략적 모호성의 공간은 증발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대만해협 위기가 현실화될수록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쟁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주한미군의 실제 이동 여부보다 그 가능성 자체가 한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인지전 소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중국은 ‘한국이 대만 문제에 끌려든다’는 서사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과제는 선택을 유보하는 데 있지 않다. 한·미동맹의 범위와 한국의 역할을 명확한 언어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군사 위기보다 먼저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찾아올 수 있다. 연세대 한석희 교수는 “대만해협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우리 안보·경제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진다”면서 “대만 위기와 관련된 우리의 전략적 모호성은 더 이상 고려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대만해협의 긴장은 곧 한국 사회의 인식과 결속을 시험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전쟁은 총성과 함께 시작되지 않는다. 판단이 흐려지고, 공포가 확산되며,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 이미 시작된다. 대만에서 울린 사이렌은 연습이었지만, 대만해협을 둘러싼 경고음은 점점 더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한국을 향해 울리고 있다


정용환 대만 국립정치대 방문학자(전 중앙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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