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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관한 내 어지러운 생각들 [왕겅우 회고록 (39)]

중앙일보

2026.01.23 13:00 2026.01.2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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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도 나도 중국을 떠날 때 갖고 있던 책을 난징의 대학도서관에 기증했고, 이제 보니 집에 읽을 책이 없었다. 내가 가르치던 학교들 도서관에는 교재와 참고서밖에 별로 없었고, 시내의 회원제 도서관에서는 영국 대중소설만 구입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어떤 과목들을 택할지 판단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을 좀 찾기는 했는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겠다.

그 해에 이포에서 읽은 책들에 관한 메모를 적은 너덜너덜한 공책 하나를 몇 해 전에 우연히 찾아냈다. 날짜가 적힌 것은 1949년 1월의 한 차례뿐인데, 20쪽의 메모 내용은 그로부터 몇 달 동안에 적은 것으로 보여서, 그 해의 내 생각들을 담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문으로 쓴 미완성의 시 하나가 “Ode to Yangtse”란 제목으로 남아있어서 중국에 대한 감상적 동경을 보여주는데, 날짜는 적혀 있지 않다. 여기 붙어 있는 중국어로 인용된 두 구절 중 하나는 진정한 시의 본질을 논한 것이고, 또 하나는 중국의 전통적 선비들이 좋은 그림을 판별한 기준을 적은 것이었다. 둘 다 별것 아닌 내용인데, 당시 시와 미학에 관련된 사상을 모색하던 내 모습이 남긴 흔적이다.

읽고 있던 세 권 책에서 인용한 내용은 그보다는 진지한 것이었는데, 대학에 다시 다닐 상황에 대비한 공부였던 것 같다. 그 책들을 구한 경위는 적혀 있지 않고 인용된 내용은 이제 받게 될 서양식 교육에 생각이 쏠려 있던 내 모습을 보여준다. J.A.C. 브라운의 〈사회의 진화 The Evolution of Society〉, 카렌 호니의 〈우리 시대 인간성의 노이로제 현상 The Neurotic Personality of Our Time〉과 모리스 긴스버그의 〈사회의 심리학 The Psychology of Society〉이었는데, 사회학과 심리학에 약간의 철학을 곁들이는, 내가 접하지 못하던 분야를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인용문 중 아래 것들이 내 관심을 가장 끈 내용을 보여준다.

● 브라운 책에서: “사회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방법으로 조직된 개인들의 집합일 뿐이다.” “국가란 인간이 자기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다.”

● 호니 책에서: “집단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맹목적으로 상실하는 데서 얻는 즐거움이 자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다. 사람들은 자유가 홀로 선다는 뜻일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하고, 고독을 면하기 위해 아무리 부조리하고 이상한 믿음이라도 받아들이려 한다.” 좌절감에 관한 대목과 야욕을 억누르는 방법에 관한 대목들을 인용하고 저자의 취지를 요약한 것으로 생각한 내용을 적어놓았다. “저자는 권력의 갈망과 애정의 과도한 요구를 현대세계의 가장 대표적인 노이로제 현상으로 꼽는다. 둘 다 사회적 불안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저자는 본다.”

● 긴스버그 책에서: 억압과 억제, 표현, 승화와 노이로제에 관한 짤막한 인용들 중에 긴 인용 하나가 있었다. “국가와 여러 형태의 공동체들이 일종의 통일성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이 통일성은 목적과 이념에 입각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일 뿐이므로 그 인격이나 의지를 논할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공동의 생활에 참여하고 집단적 성취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라도, 이 생활을 하나의 실체로 보며 각 개인이 타인들과 관계 속에 각자 살아가는 현실을 초월하고 포괄하는 현실성을 이 실체에 부여하려 들면 혼란만 일어날 것이다.”

나는 분명히 나 자신의 개별성에 관심이 있었고, 부모님이 가르쳐준 내용에서 모순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문학에 초점을 둔 아버지의 가르침은 나 중심의 생각을 북돋워 주었고, 영국식 학교도 그런 쪽으로 더 밀어주었다. 반면에 어머니는 가족에 대한 확고한 의무감을 심어주었고, 민족의식도 자라나고 있었다. 쑨원에서부터 국민당과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중국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중국의 번영을 위해 필요한 통일성과 집단적 노력을 강조하고 있었다.

다른 필자 두 사람의 인용문이 그 공책에 들어있는데, 직접 읽은 글인지 호니와 긴스버그의 책에 인용된 글을 본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야욕에 관한 몇 꼭지는 윌리엄 H. 셸던의 〈심리학과 프로메테우스의 의지 Psychology and the Promethean Will〉에서 나온 것인데 호니의 책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한 꼭지는 사병(私兵)의 금지로 중세의 소소한 분쟁이 사라진 사실을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영주들의 야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힘이 제거되었다. 국제전을 일으킬 국가의 힘을 제거하기 위해 비슷한 조치가 필요하다.” 가능한 일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것일까?

다른 인용문 중에 카를 만하임의 것들이 있는데 어느 책에서 뽑은 것인지 적혀 있지 않다. 싱가포르에서 공부할 때 만하임의 〈이념과 유토피아 Ideology and Utopia〉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포에서는 그 책을 읽지 않았을 텐데, 긴스버그의 책에 인용된 것을 보고 특별히 유의해 둔 것 같다. 만하임의 주된 논점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게 될 주제에 걸린 것이었다. 그 논점을 여기 적어 이포에서의 전환기 동안 내가 중요하게 여긴 주제를 밝히도록 한다.

1. 이웃을 대하는 범위가 갈수록 넓어지는 과정을 역사가 보여준다. 그래서 씨족이 부족이 되고 부족이 민족이 되고 민족이 제국이 되는 것이다.

2. 그와 동시에 집단 속에서 개인의 고립은 심화한다. 이 개인주의가 한편으로는 과학과 예술의 위대한 발전을 가져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과 집단의 단절을 보여주는 노이로제와 범죄성을 가져온다.

3. 오늘날 국가들은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제시된 방안인데, 인간이 집단 속에 자기 자신을 매몰하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단주의의 혜택을 주면서 자유를 희생시키지 않는 사회를 세울 길이 있을지가 과제다.

여기 인용된 글은 주변의 세상에 관한 어지러운 생각들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심리학이나 사회학이나 정치철학 같은 분야를 공부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현실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나중에 알게 되는 것처러 말라야대학에 그 학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과가 넷뿐이었다. 영문학, 역사학, 지리학, 그리고 경제학. 학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넷 중 셋을 골라 3년간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자격을 인정받으면 하나를 골라 졸업반에서 공부하게 된다. 나는 역사학을 고르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남겨둔다.

그 공책을 치워놓은 후 60년 동안 다시 들여다보는 일 없이 지냈다. 1949년 이래의 여러 차례 이동 중 사라지지 않은 것이 희한한 일이다. 그때 읽은 내용이 현실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 입학 후 다시 떠올릴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공책을 다시 보면서 내가 졸업반에서 문학을 선택하지 않기로 결정할 때 대신 경제학 공부를 고려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경제학 공부를 통해 다른 사회과학 분야들을 접하게 되었고, 마르크스, 프로이드와 베버, 카를 만하임, 카를 야스퍼스, 피트린 소로킨, 버트랜드 러셀과 해롤드 라스키의 글에 끌리면서 존 스튜어트 밀과 허버트 스펜서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졸업반 교과과정은 경제 전문가의 훈련을 위해 짜여진 것이어서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위 인용문들은 내 생각이 자라나던 방향을 보여주면서, 또한 사회과학에 대한 내 접촉면이 울퉁불퉁하고 갈팡질팡했던 이유도 설명해 준다. 역사학의 선택이 좀 더 열린 방향을 바라는 마음에서 택한 길이 아니었나 깨닫게 해준다. 결국 고대사를 전공으로 택하고 중국학과 고전학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동남아시아 새 국가들을 지배하게 되는 현대의 사회적 정치적 주제들로 돌아오게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Wang Gungwoo, 〈Home is Not Here〉(2018)에서 김기협 뽑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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