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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으면 나오는 '뽑파민'에 중독된 사람들 [월간중앙]

중앙일보

2026.01.2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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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이 간다] ‘한 판만 더’…요즘 대세 된 인형뽑기 투어

돈은 펑펑 통장은 텅텅…쓰고 나서 후회하는 반복 소비의 그늘
‘정품같아 보였는데’…막상 뽑고 나니 보이는 짝퉁 인형의 함정

인형뽑기방은 가족 단위부터 연인, 친구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폐해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박가남 인턴기자
“지율아! 아빠가 티니핑 뽑았어!” 디지털미디어역으로 향하는 골목길의 인형뽑기방에서 한 중년 남성이 환하게 웃으며 투명 진열장 안을 가리켰다. 기계 안에서 떨어진 분홍색 캐릭터 인형을 본 아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옆에 서 있던 가족은 휴대폰을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이처럼 인형뽑기방은 가족 단위부터 연인, 친구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와 부모, 연인과 친구까지 세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한 판만 더’를 외치고 있다.

홍대 인근에는 인형뽑기 매장이 우후죽순으로 생겨 젊은 층 사이에서 일명 ‘인형뽑기 투어’가 하나의 놀이 코스로 자리 잡았다. 주말이면 매장 여러 곳을 돌며 인형을 모으는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블로그와 SNS에서는 ‘홍대 인형뽑기 투어 후기’, ‘오늘의 수확 인증’ 같은 제목의 게시글이 잇따른다. 어느 매장이 잘 뽑히는지, 어떤 기계가 확률이 높은지를 공유하는 글도 적지 않다.

용산역 인근에서 인형뽑기 매장을 운영 중인 김유근(46)씨는 “초기에는 기계 설치비가 들지만, 무인 운영이 가능해 인건비 부담이 거의 없다”며 “고정비가 적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이른바 ‘돈을 벌어다 주는’ 업종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SNS에서 ‘잘 뽑히는 매장’이라는 입소문이 나면 실제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며 “블로그 후기나 인증 사진이 사실상 가장 큰 홍보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풍경은 고물가와 경기 침체라는 경제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소비자들은 한 번에 지출하는 금액은 낮추되, 부담 없는 소액으로 보상에 대한 기대와 심리적 만족을 채우려 한다. 구혜경 충남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경기 침체는 소비자에게 일종의 위기 상황”이라며 랜덤뽑기나 인형뽑기와 같은 소비에 대해 “경제적 리스크를 관리하면서도 최소한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비 양상”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구교수는 “스스로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는 범위 안에서 즐거움을 선택하는 자기조절적 소비 방식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이런 소비가 지나치게 반복될 경우 지출은 늘어나지만 기대한 만족을 얻지 못할 위험도 커진다”며 “소비자 스스로 지출 한도를 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왜 청소년과 20대가 더 빠져드나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되는 뽑기방은 카드만 있으면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손맛에 중독된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1월 7일 홍대입구역 인근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고등학생 이지현(18)씨는 “학원이 끝난 뒤 친구들과 스트레스를 풀려고 종종 들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하고 나면 ‘도박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같이 온 일행 유혜민(18)씨는 “갖고 싶은 인형이 있으면 친구들과 돈을 합쳐서 될 때까지 계속 뽑는다”고 덧붙였다. 총 얼마를 썼느냐는 질문에는 “30분 정도에 7만원쯤 쓴 것 같다”며 허탈함을 내비쳤다.

이처럼 랜덤뽑기는 가격 대비 효용을 따지는 이성적 판단보다도 과정에서 느끼는 ‘도파민’에 가치를 두는 소비 행위에 가깝다. 이러한 특성은 청소년과 20대에게 더 강하게 작용한다. 문찬기 전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과 20대는 또래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인정에 민감한 시기”라며 “뽑기 문화가 친구나 연인과 함께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뽑는 기술을 과시하거나 결과물을 선물하는 행위 자체가 인정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디어에서 이를 낭만적인 경험으로 반복 재현하면서 도박적 요소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지는 측면도 있다 ”고 덧붙였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즉각적인 보상을 통한 자기 고양 효과가 꼽힌다. 문 교수는 “학업이나 취업 준비처럼 보상이 지연되고 불확실한 과제에 놓여 있는 청년층에게 인형뽑기는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성취감을 제공한다”며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낮아진 자존감을 일시적으로 회복하려는 심리가 이러한 뽑기형 소비에 더 쉽게 빠져들게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경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는 “20대 중반까지는 행동 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이 완전한 성숙단계에 이르지 않아 보상에 민감하고 충동 조절이 상대적으로 약한 연령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매력이 낮은 청소년일수록 적은 비용으로 즉각적인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인형뽑기가 주요 소비재가 되기 쉽고, 캐릭터 인형이나 키링 등이 온라인 게임·콘텐트와 연동되는 경우가 많은 점 또한 10~20대 소비 집중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카드만 넣으면 랜덤으로 손쉽게 인형을 뽑을 수 있는 가차샵. 박가남 인턴기자


될 때까지 해야 본전? 반복 결제를 부르는 뽑기

1월 5일 합정역 인근 인형뽑기방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규(25)씨는 “다섯 번 정도 돈을 쓰고 나니, 이미 들인 비용이 아까워서라도 원하는 인형이 나올 때까지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면 지금까지 쓴 돈을 그냥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뽑을 때까지 해봐야 본전이라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뽑기 기계 소비자들은 인형이 뽑힐지를 자신의 ‘손맛’이나 ‘운’에 맡긴다고 느끼지만, 실제 결과는 기계 내부 설정과 확률 구조에 크게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게임의 조건이나 규칙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결제를 이어가고, 이는 합리적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박은아 대구대 심리학과 교수는 랜덤뽑기 소비가 학습심리학의 ‘강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인형뽑기에는 보상을 간헐적으로 제공해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원리가 숨어 있다”며 “이는 룰렛이나 슬롯머신처럼 도박자가 계속 게임을 반복하게 되는 심리 구조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보상이 매번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엔 실패했지만 다음엔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화되고, 가끔 성공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반복 행동을 더 강하게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소비자협회 관계자는 소비자가 인지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로 ‘확률 정보의 불투명성’과 ‘게임 설계의 비대칭성’을 꼽았다. 획득 확률이나 기계 설정값, 상품 구성 비율 등이 소비자에게 명확히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단순한 오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업자가 결과를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소비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협회 측은 특히 “랜덤뽑기의 경우 ‘당첨 가능성’만 강조될 뿐, 당첨되지 않았을 때 소비자가 얻는 실질적인 효용은 거의 없음에도 이 같은 정보가 충분히 고지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구조가 반복 결제를 유도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어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의 점검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소비자협회는 향후 뽑기형 소비가 더욱 확산될수록 확률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미성년자·청소년 보호 장치 마련, 소비자에 대한 사전 고지 강화 등 제도적 보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의도 IFC몰의 한 가차샵(랜덤뽑기)에서 만난 대학생 김규리(23)씨는 뽑기 열풍 현상을 애니메이션 인기와 연결지었다. 김씨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며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지날 때마다 한 번씩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원하는 캐릭터를 뽑고 나면 기대했던 품질에 미치지 못해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짝퉁 인형’ 거를 수 없는 현실

이 같은 경험은 뽑기를 통해 인형을 얻은 사람이라면 한 번씩 겪어봤을 것이다. 일부 매장에는 정품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인형이 진열돼 있지만, 실제로는 공식 라이선스를 거치지 않은 위조 제품이거나 마감과 재질이 조악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는 외형만 보고 뽑기를 시도할 수밖에 없어 정품 여부나 품질 수준을 사전에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피해 가능성이 상존한다.

매장에 진열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캐릭터를 모방한 인형. 하지만 모조품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 박가남 인턴기자
손영식 경북대 지식재산사업단 교수(법학박사·변리사)는 “인형뽑기방의 캐릭터 짝퉁 인형은 기본적으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고, 유명한 캐릭터의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도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타인의 캐릭터를 위조한 속칭 ‘짝퉁 제품’을 인형뽑기방에 유통하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으로 침해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청구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손 교수는 “법적 책임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인형뽑기방에 대한 단속과 처벌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구조”라고 지적했다. 소규모 무인 매장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데다, 위조 여부를 현장에서 즉각 판단하기 어렵고, 피해 규모 역시 개별 매장 단위로는 크지 않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동엽 경북대 지식재산융합학과 교수는 인형뽑기방의 위조 캐릭터 인형 문제는 매장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공급망 전반을 겨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그는 “수입·도매 단계에서의 정밀한 단속과 함께 거래 증빙 의무를 강화해 유통 경로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품 경품 매장 인증 등 자율 규제와 시민 신고 시스템 고도화,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를 병행한다면 위조품 유통을 억제하는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가남 월간중앙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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