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천(防川·둑) 속에 피라미 떼가 몰려들어 그물을 쳐서 2000마리를 잡았다. 그대로 전선 위에 앉아서 우후(虞候·조선시대 관직) 이몽구와 술을 마시며 봄의 경치를 구경했다.” (1592년 2월 1일) "
" “여러 장수들이 관덕정에서 활을 쏘는데, 우리 편의 장수들이 이긴 것이 66푼이었다. 그래서 우수사가 떡과 술을 장만해 왔다.” (1593년 3월 15일) "
" “경상 우수사(원균)의 배로 가서 함께 앉아 군사에 관한 일을 의논하고 왔다. 연거푸 한 잔, 한 잔 마시다 보니 몹시 취해 돌아왔다.” (1593년 6월 18일) "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란(戰亂) 중 쓴 친필 일기를 모은『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술(酒)’에 얽힌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무려 130여회에 달한다. 박종평 (사)서울여해재단 이순신학교 교수는 “10여일에 한 번 꼴로 나온다”며 “일상적으로 술을 마셨다기보다는 주로 누군가 부임하거나 떠나거나, 활쏘기 훈련 후 부하 장수들과 마시는 등 단합·소통 위한 술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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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 마신 술은?
난중일기에 이름이 언급된 술은 3가지다. 1593년 5월 17일 고성 현령이 군관을 통해 문안차 보낸 추로주(秋露酒), 1594년 7월 27일 부하 장수와 활을 쏜 뒤 마신 과하주(過夏酒), 1597년 8월 21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약으로 마셨다가 10여번 토한 소주(燒酒)다. 모두 우리의 전통 발효주다.
추로주는 ‘가을 이슬(秋露)’처럼 맛과 색이 맑고 향기로운 술로 선비들이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이 쓴 시문(詩文)을 수록한 『열성어제(列聖御製)』에 언급될 정도로 품격 있는 술이었다. ‘여름을 지날 수 있는(過夏)’ 술이란 뜻에서 이름 붙여진 과하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 여름철 변질되기 쉬운 약주에 도수가 높은 소주를 섞은 귀한 술이라고 한다.
박 교수는 “장군도 평상시에는 막걸리를 드셨던 것 같은데, 직접 이름이 나온 건 이 3가지뿐”이라며 “이런 장군의 술을 제대로 복원·재현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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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술’ 복원·재현 나선 ‘전통주 지킴이’
이와 관련해,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주요 전장(戰場)이었던 경남에서 장군이 마신 ‘장군의 술’을 복원·재현 작업에 나선 단체가 있어 이목이 쏠린다. 바로 ‘경상남도전통주보존회(이하 보존회)’다. 이 단체는 인공첨가물 없이 우리 쌀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은 우리 전통주를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2024년 10월 출범했다.
‘전통주 지킴이’로 유명한 허승호(59) 보존회 회장은 “전통주 교육으로 남해안에 있는 경남 통영의 한산도 등을 자주 찾았다. 그런데 통영 꿀빵 등 먹거리는 있지만, 지역을 대표할 술이 없는 게 아쉬웠다”며 “통영에는 삼도수군 통제영도 있으니 이순신 장군은 어떤 술을 드셨을까 고민하던 중 이 3가지 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추로주에 주목했다”며 “난중일기에 구체적인 술 빚는 레시피(조리법)가 없는 상황에서 과하주는 여러 기법이 있는데 추로주는 조선시대 쓰인 「주찬(酒饌)」, 「잡초(雜抄)」 등 고문헌 속 주방문(酒方文·술 빚는 법이 적힌 조리서)의 내용이 똑같아 장군이 마신 술과 동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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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서 시도했다 실패…“두 번째 시도, 3·4월쯤 선보일 것”
경남 창원에 있는 허 회장의 발효·숙성실에는 고문헌 속 조리법대로 빚은 추로주가 70L짜리 술항아리 5독에서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보존회가 복원·재현을 시도한 추로주에는 경남에서 난 쌀과 물(창원) 그리고 누룩(진주)만 사용했다. 또 현대의 ‘항온항습’ 시설이 없었던 조선시대를 감안, 보일러도 켜지 않은 이 공간의 바닥은 냉골이었다.
허 회장은 “‘천지(天地) 간의 기운에 맡긴다’라는 말처럼 자연의 리듬에 맡기는 것”이라며 “수시로 술의 상태를 확인, 너무 추울 땐 창문을 닫는 방식으로 영상 3~12도 수준을 유지 중”이라고 했다.
보존회의 추로주 복원은 이번이 2차 시도다. 지난해 1월 통영에서 진행한 1차 복원 작업이 실패하면서다. 허 회장은 “통영에서 빚는 게 상징성이 있어 진행했는데, 처음 시도인데다 사는 곳과 거리도 있다 보니 세심하게 챙기지 못했다”며 “통영이 생각보다 날씨가 따뜻했던 탓인지, 1차 때 나온 술은 추로주라는 이름과 달리 맛과 색이 모두 탁해 실패라고 결론지었다”고 했다.
보존회는 2차 시도 중인 이번 추로주는 오는 3~4월 중 완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허 회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가 지역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그 덕분에 지역 농가의 쌀 소비를 돕고 나아가 젊은 세대의 입맛에도 맞는 술을 만들어 전통과 현재를 잇는 술을 빚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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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순신 막걸리’ 복원했었지만…
과거에도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술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2010년 경남도에서 진행한 일명 ‘이순신 막걸리(조선수군 주)’가 대표적이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술 이야기를 토대로, 이순신 장군과 부하 등 조선 수군이 마셨을 것으로 짐작되는 막걸리였다. 경남도는 마산대 막걸리연구센터에 복원을 의뢰했다.
마산대학 막걸리연구센터는 이를 위해 조선시대 요리책『수운잡방(需雲雜方)』, 『음식디미방』등 고문헌과 난중일기를 참고, 경남 통영·남해와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지역과, 충남 아산 등 내륙 지역도 방문해 현지 전통주 제조 방법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복원 작업을 마쳤다. 도는 상표 출원도 시도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남도 관계자는 “당시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宗會)’에서 상표 등록을 동의하지 않아 최종 출원은 못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