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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총재 저격…통일교 막내아들, 충격의 '총기 결혼식'

중앙일보

2026.01.24 13:00 2026.01.24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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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의 향후 후계 구도를 놓고 여러 세력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통일교를 창시한 문선명 총재는 14년 전에 이미 사망했고, 한학자 총재는 정치권 로비와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현재 구속 상태입니다. 게다가 한 총재는 올해 83세입니다. 통일교의 후계 구도,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더중앙플러스-‘백성호의 궁궁통통2(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57)’에서 통일교를 해부했습니다.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는 2012년 세상을 떠났고, 최근 한학자 총재까지 구속되면서 리더십의 공백기에 빠졌다. 톹일교의 후계 구도는 어떻게 흘러갈까. 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문 총재와 한 총재 사이에는 7남7녀, 모두 14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사실 문 총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후계자를 미리 정해놓았습니다. 기업 쪽(통일그룹 회장)은 4남 문국진에게, 교회 쪽(통일교 세계회장)은 7남 문형진에게 맡겼습니다.

2008년 기자간담회에서 문형진 당시 통일교 세계회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종교에 심취하게 된 사연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문형진이 19세 때였습니다. 바로 위의 형(문영진, 당시 21세)이 추락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미국 네바다주 리노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떨어졌습니다. 사고냐, 자살이냐를 놓고 논란도 있었습니다. 추락한 문영진은 당시 컬럼비아대에서 동양학을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문형진은 형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동양학과 선불교, 유교와 도교 등에 대한 책들이었습니다. 결국 문형진은 하버드대에서 철학(학사),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석사)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도 머리를 승려처럼 빡빡 밀고, 승복 같은 한복을 입고, 목에는 염주를 걸고 다녔습니다. 유럽의 수도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를 ‘엉뚱한 괴짜’로 봤습니다. 심지어 통일교 사람들도 그렇게 봤으니까요.

문형진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부처의 가르침이 그 당시 제게는 큰 위안이었다.”

그가 통일교 교회를 승계하는 후계자로 지명됐을 때, 제가 물었습니다.
“불교에서도 법맥은 혈육으로 잇지 않는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를 잇는 것은 ‘세속의 피’가 아니라 ‘영성의 피’가 되어야 하지 않나. 바깥에서는 교회 세습으로만 보인다. 자신에게 그런 자격이 있다고 보나?”

이 물음에 문형진 세계회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과 종교학을 전공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확실한 한 가지가 있더라. ‘나는 정말로 아는 게 없구나.’ 다만 제 속에 그런 잠재력이 있다고 믿고 싶다.”

이때만 해도 통일교의 승계 과정은 무난하게 진행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큰 돌발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2012년에 문선명 총재가 사망했습니다. 막내인 문형진에게 통일교 교회를 맡긴 지 4년 후였습니다. 통일교 신자들은 문 총재 부부를 ‘참부모’라고 부릅니다. 문 총재가 ‘참아버님’라면, 한 총재는 ‘참어머님’입니다.

문 총재의 사망과 함께 한 총재는 빠르게 움직이며 통일교의 중심에 섰습니다. 교회 내 모든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당시 통일교의 지도부도 이미 문 총재 부부를 중심으로 꾸려져 있던 조직이었습니다. 한 총재가 중심에 서는 걸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겠지요.

만약 막내인 문형진이 통일교를 승계했다면 조직 내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불지 않았을까요. 4남 문국진과 7남 문형진은 어머니인 한학자 총재에게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어머니가 어겼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총재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형진과 문국진은 어머니에게 반기를 든 채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왕자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문선명 총재의 7남 문형진과 아내 이연아 씨가 소총을 들고 있다. 사진 문형진 페이스북

한학자 총재에게 강하게 반발한 아들은 4남과 7남 외에 또 있습니다. 다름 아닌 3남 문현진입니다. 그는 셋째 아들이지만 형들이 요절하면서 사실상 장남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통일교 교회의 승계가 7남 문형진에게 가자 문현진은 교회를 떠났습니다. 문선명 총재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통일교의 한국 내 기업(통일그룹)은 문국진(4남)에게, 교회는 문형진(7남)에게, 그리고 미국 내 기업(UCI)은 문현진(3남)에게 맡겼습니다.

거대 자산그룹인 UCI의 문현진 회장은 종교보다는 글로벌 평화 운동을 주장하는 인물입니다. 문현진과 통일교 사이에 재산에 대한 법적 분쟁이 일었습니다. 문현진 회장은 통일교 측과 14년간 끌어온 법적 분쟁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며 최근 여의도 파크원 빌딩에 대한 법적 관리권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파크원의 토지는 통일교 재단 소유입니다.

통일교 측은 미국 연방법원에 상고해 최종심 판결을 기다리는 입장입니다. 문현진 회장 역시 한학자 총재의 ‘독생녀(獨生女)’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통일교의 후계 다툼은 크게 보면 삼각 구도입니다. 한학자 총재를 중심에 둔 통일교 측과 문 총재로부터 내려오는 정통성을 주장하는 7남 문형진(4남 문국진), 그리고 막강한 자산을 바탕으로 평화 운동을 주장하는 3남 문현진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머니와 아들들의 삼파전입니다.

(계속)

한편 어머니 한학자를 ‘바빌론의 음녀’라 부르며 공개적으로 저격한 7남 문형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독자적인 교회를 세운 뒤, AR-15 소총을 손에 든 채 합동결혼식을 진행해 사회에 큰 충격을 줬습니다. 왜 그는 ‘총기 축복식’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했을까요.

통일교의 기이한 결혼 서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문선명 총재는 차남 문흥진이 17세에 사망하자 ‘영혼 결혼식’을 치러줬고, 평생 독신으로 남편의 영혼을 섬기게 된 둘째 며느리에게 장남의 딸을 입양시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한학자가 구속된 이후 통일교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핵심에는 장남과 차남의 ‘며느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연을 안고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걸까요. 두 며느리들 뒤엔 아들들의 반격에 맞서는 한학재 총재의 ‘비장의 카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통일교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다툼의 전말,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학자에 반기 든 세 아들…지금 통일교에선 무슨 일이 (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6108

세 아들에 맞설 ‘천애축승자’…한학자 후계구도 비장의 무기 (중)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7887

장남의 딸, 둘째 며느리 줬다…한학자 차남과 영혼결혼한 그녀 (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99510


백성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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