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3일 미국 달러ㆍ엔 환율은 160엔에 육박하다가 장중 4엔 가까이 급락하는(엔화값은 상승) ‘스파이크’가 나타났다. 엔화 급락 우려에 미국과 일본 외환 당국이 이례적으로 공조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면서다. 시장에선 엔화와 동조화 경향을 보여온 원화 역시 단기적으로 하락 압박이 완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달러ㆍ엔 환율은 전날보다 2.75엔(1.73%) 하락한 155.68엔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었다. 엔화값이 뛰면서 같은 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7.6으로 전날보다 0.7% 하락했다.
엔화 환율은 일본은행(BOJ)의 기준금리 동결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을 보였다. 이날 오후 3시 30분에 시작된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의 기자회견 중에 달러엔 환율은 159.1엔 안팎까지 솟구쳤다. 우에다 총재가 금리 인상에 대한 신중한 기조를 재확인하면서다. 그러나 회견 종료 직후 환율은 방향을 틀어 급락했다.
BOJ와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엔화 급락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 ‘레이트 체크(rate check)’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레이트 체크는 당국이 시장 개입 전에 주요 은행 등을 상대로 거래 상황 등을 문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 언론도 소식통을 인용해 “미 재무부의 지시에 따라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잠재적 거래 상대방인 금융기관들과 접촉해, 실제 개입 시 가능한 거래 가격대를 문의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과도한 엔저를 막기 위해 미ㆍ일 당국이 공조에 나섰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엔화를 다시 사들이는 환매수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는 “주말로 접어들면서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시장에서 퍼졌고, 특히 이례적으로 미국의 지원까지 동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수퍼엔저가 이어질 경우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 확대와 제조업 경쟁력 약화 부담을 안게 된다. 엔화 약세가 일본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미국 기업의 수출 여건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일본도 수입 물가 상승 부담과 함께 미국의 ‘환율 조작’ 문제 제기로 번질 가능성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과 일본 당국 모두 현재의 엔화 가치 수준에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며 “엔화 가치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사소한 신호에도 모두가 매우 예민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엔화와 높은 동조성을 보여온 원화 역시 즉각 반응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ㆍ원화 환율은 지난 24일 새벽 2시 야간장에서 전날 대비 7.4원 내린(원화값 상승) 1462.5원에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엔화 반등으로 원화의 단기 변동성도 다소 완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원화 약세 진정 흐름에 엔화 약세에 따른 대외적 압력,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기대 심리도 일부 작동할 수 있어 달러당 원화 환율이 고점을 위협하던 긴장 국면은 당분간 숨 돌릴 여지가 생겼다”고 말했다.
다만 IBK투자증권의 정용택 연구원은 “단순한 한ㆍ미 금리 격차 축소나 수급 조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미국과의 경제 성장률 격차를 빠르게 좁히지 못하면 원화의 구조적 약세 압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