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체조 여제도, 스키 여제도…싸워이긴 건 ‘두려움’

중앙일보

2026.01.25 07:0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팟캐스트에 출연해 대화하는 바일스(왼쪽)와 시프린. 각각 체조와 알파인 스키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두 ‘여제’의 우정은 많은 스포츠팬에게 감동을 안겼다. [사진 시프린 유튜브]
정상의 자리는 늘 고독하다. 그러나 그 무게를 견디는 이들은 서로의 그림자만 보고도 그 안에 숨겨진 아픔을 알아채곤 한다. 알파인 스키 남녀 통합 역대 최다승(102승)이라는 전무후무한 신화를 쓰며 설원을 지배해온 미카엘라 시프린(31)과, 자신의 이름을 딴 독보적 고난도 기술들을 앞세워 체조 역사를 새로 쓴 ‘살아있는 전설’ 시몬 바일스(29). 각자의 종목에서 신(神)의 영역에 도달한 듯했던 두 여제지만, 정점에서 그들이 견뎌야 했던 외로움은 메달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고 시렸다.

최근 시프린과 바일스가 종목을 초월해 서로의 구원자가 되어준 남다른 우정을 공개해 화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해진 두 여제의 진솔한 고백은 전 세계 팬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USA투데이 등 주요 외신은 지난 24일(한국시간) 시프린의 유튜브 팟캐스트에 바일스가 게스트로 출연해 1시간 동안 나눈 대화 내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대담의 주제는 화려한 기록이 아닌, 그 영광 속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인 고뇌’였다.

둘의 인연은 2021년 도쿄 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바일스는 극도의 압박감으로 공중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트위스티즈’ 현상을 겪으며 심리적 한계에 부딪혔다. 그가 구사하는 기술들이 워낙 위험하고 독보적이어서 국제체조연맹(FIG)조차 다른 선수들의 부상을 우려해 난이도 점수를 일부러 낮게 책정할 정도였기에, ‘무결점의 신’이라 불리던 바일스의 갑작스러운 추락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대부분의 종목을 기권하며 홀로 고통을 감내하던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건 스키 여제 시프린이었다.

당시 시프린은 일면식도 없던 바일스에게 연락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시프린은 “TV 속 바일스를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마치 내가 바일스가 된 것처럼 그가 느끼는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다”고 회상했다. 이어 “경기를 포기하면서도 끝까지 남아 동료들을 응원하던 바일스의 모습은 진정한 감동이었다. 어렵게 출전한 평균대에서 따낸 동메달은 메달의 색깔보다 더 큰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라며 경의를 표했다.

선배의 따뜻한 손길은 1년 뒤 고스란히 되돌아왔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시프린이 충격적인 부진에 빠지자, 이번엔 바일스가 든든한 조언자로 나섰다. 바일스는 “시프린의 경기를 보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감정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했기에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텍스트로만 우정을 쌓던 두 전설은 2024 파리 올림픽 현장에서 처음 대면하며 깊은 연대를 확인했다.

여제들에게도 올림픽은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밀라노 올림픽을 앞둔 시프린은 “여전히 악몽을 꾼다. 내게 좋은 결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에 바일스 역시 “나도 파리 대회를 앞두고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까 무서웠다”고 고백하며, “결국 자신의 내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가장 강해질 수 있다.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깊은 울림을 전했다.





고봉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