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제대로 못 하는 불쌍한 애잖아요.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딸한테 너무 미안해서….”
인천 강화군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시설장 A씨에게 성폭행당했다고 진술한 40대 여성 이명신(가명)씨의 어머니는 지난 2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 이같이 말하며 오열했다. 어머니 B씨(62)는 지난 2008년 딸을 색동원에 보냈다. 이씨가 23살이 되던 해였다. B씨는 “딸이 많이 산만한 성격이라 걱정이 돼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시설에 찾아갔다”며 “시설장이 유달리 명신이를 예뻐해 줬다”고 기억했다. B씨는 형편이 어려운 본인 대신 딸을 돌봐주는 시설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시설을 믿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색동원에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이씨는 그렇게 16년을 시설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시설 측이 “이제는 딸과 함께 지내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B씨는 고심 끝에 지난 2024년 7월 이씨를 집으로 데려왔다. B씨는 “나도 20년 가까이 떨어져 지내다 보니 이제는 딸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예전보다 복지 정책도 좋아졌으니 충분히 지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딸과의 생활이 차츰 적응돼갈 무렵인 지난해 여름, 경찰이 B씨를 찾아왔다. 경찰은 B씨에게 딸이 시설에서 폭행을 당한 정황이 있어 수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경찰이 가고 난 뒤 시설에서 선생님 3명이 찾아와 별일 없었는지 추궁하듯 묻길래 명신이가 폭행을 당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되물었다”며 “나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해명을 하길래 오해가 있겠지 생각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B씨는 애써 잊으려고 노력했다. 딸을 지극 정성으로 돌봐주던 시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리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곧 물거품이 됐다. B씨는 “명신이가 시설장에게 성폭행당한 정황이 있다고 심층 조사를 받으라고 연락이 왔다”며 “내 새끼를 누가 때리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데 성폭행이라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달 1일부터 이틀간 국내 한 대학 연구팀이 진행하는 심층 조사에 참여했다. ‘인천 강화군 장애인 거주시설(색동원) 입소자 심층 조사 보고서’엔 조사에 참여한 장애인 19명이 A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과 더불어 시설 관계자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이 담겼다. 이씨는 A씨가 바지 안에 손을 넣어 성폭행하거나 직원이 폭행했다는 내용을 조사 과정에서 연구팀에 알렸다.
그러나 강화군이 보고서를 비공개하면서 어머니는 딸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다. B씨는 “딸이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 전혀 몰랐다. 언론 보도가 나고서야 알았다”며 “그동안 정말 믿고 싶지 않았는데, 딸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한참을 오열했다. 그러면서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불쌍한 애들을 상대로 그런 짓을 하는 게 인간이 맞냐”며 “그 사람들을 믿었던 내가 원망스럽고, 시설장이라는 사람을 정말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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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소자 2명만 심층조사…전수조사 필요"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천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10년간 색동원을 떠난 장애인은 총 35명(남자 19명, 여자 16명)이다. 퇴소자 중 2명은 사망했으며, 나머지는 가정에 복귀하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졌다. 이번 심층 조사에 참여한 퇴소자는 이씨를 포함해 2명뿐이다. 장종인 색동원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시설 직원들이 범행을 묵인하거나 가담한 정황이 있는 만큼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보건복지부가 나서 퇴소자까지 포함해 피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색동원 사건 TF’를 구성하고 색동원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와 협력하기로 했다. 변호사단을 꾸려 피해자 진술을 조력하는 등 사건 마무리 단계까지 법률 지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A씨를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 강간·강제추행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경찰은 확인된 성폭행 피해자 4명 외 나머지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이번 달 안으로 마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