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향후 북한의 위협에 대해 한국이 주된 책임(primary responsibility)을 맡고, 미국은 중요하지만 제한적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support)만 제공한다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 전쟁부(국방부)가 발표한 국방전략(NDS)은 중국을 제외한 역내 위협은 이에 직면한 동맹국들이 각기 맡고, 미국은 미 본토 방어와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재확대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NDS는 “한국은 미국의 제한된 지원 하에 북한을 억제하는 주된 책임을 질 수 있다. 북한의 직접적 위협 하에 있는 만큼 한국은 이를 수행할 의지도 갖추고 있다”며 이처럼 밝혔다. NDS는 지난해 말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의 하위 문서 격으로 미국이 직면한 주요 위협과 국방 우선순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법 등을 담았다.
NDS는 “미국의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공동 방어의 부담을 공정하게 분담해야 한다”며 “너무 오랫동안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은 우리가 그들의 방위를 보조하도록 내버려 두는 데 만족해왔다”고 했다. 또 “이제는 그들이 역할을 확대하도록 장려하고 지원할 것”이라며 “미군은 본토 방어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집중”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면서 NDS는 이스라엘을 “모범 동맹”으로 수차례 언급했다. 하마스의 재래식 공격을 자력으로 격퇴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이다. 같은 논리를 한반도에도 적용한다면 북한의 재래식 위협 대응은 한국이 온전히 맡고, 미국은 북한의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확장억제를 지원하는 것으로 역할을 나누는 게 될 수 있다.
동시에 NDS는 북한의 핵 무력에 대해 “갈수록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미 본토 방어에 우선을 둔 이번 NDS 내용을 고려하면, 결국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미국이 ‘아니오’라고 답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한쪽이 공격받을 때 서로 돕는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한 한·미동맹의 성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다.
NSS에 이어 NDS도 북한 비핵화는 언급하지 않았다. 비핵화 목표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더 이상 핵 물질을 생산하지 않고, 핵 물질이 해외로 반출되지 않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개발하지 않게 하는 것도 이익”이라며 비핵화는 장기적 목표로만 언급했다.
이처럼 한·미 모두에서 비핵화라는 표현 자체가 사라지는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보유를 용인받을 기회라고 오판할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ICBM 완성을 주장하며 남한을 노린 전술핵 개발에 열을 올리는 김정은이 ‘한·미 동맹 갈라치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NDS는 북·러 간 불법적 군사 협력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하나 이상의 잠재적 적국이 다양한 위협에 걸쳐 계획적으로 혹은 기회주의적으로 함께 행동할 가능성”을 언급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우리의 동맹들이 그들을 합친 것보다 훨씬 돈이 많다. 따라서 우리 동맹들이 적절히 국방에 투자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함께 동시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억제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지출을 약속한 한국과 나토를 평가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트럼프 행정부가 ‘돈로주의’를 표방하면서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에 책임을 분담시키는 건 북한의 직접적 위협을 받는 한국엔 특히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군사적 위협을 높일 가능성이 큰 가운데 이는 자칫 ‘서울-샌프란시스코 딜레마’를 심화시키는 동맹의 변화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짚었다.
미국의 이런 한반도 관련 단기 전략 변화는 곧 대중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규모 및 역할 변경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NDS는 “(한국의) 책임 분담 변화는 주한미군 배치 태세를 현대화하려는 미국 이익과 부합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 현대화’ 정책과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임기 내 실현을 목표로 하는 전시작전통제권 회복과도 맞물려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엑스(X)계정에 NDS를 분석한 기사를 공유하면서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자주국방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며 “북한 GDP의 1.4배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5위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다만 이런 전략 조정은 결국 ‘대결이 아닌 힘을 통한 중국 억제’를 목표를 한다는 점에서 결국 한국에는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 NDS는 “목표는 중국을 포함한 그 누구도 우리나 동맹국을 지배할 수 없도록 막는 것, 즉 본질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균형’이라는 NSS 목표 달성에 필요한 군사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 방법으로 NDS는 집단 방어(collective defense)를 수차례 언급했는데, 결국 대중 견제 부담을 동맹에도 전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아가 주한미군의 태세 조정은 한반도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NDS는 “NSS가 명시한 바와 같이 미국은 더는 서반구 핵심 지형에 대한 접근권이나 영향력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등 미국의 서반구 패권 회복 의지에 상대적으로 방점을 뒀다. 북한 등 한반도 문제가 우선순위에 들어있지 않은 만큼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 등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언제든 변동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NDS를 보면 미국은 서반구의 안보에 영향력을 집중한다는 기조인데, 이는 한국과 같은 아시아 동맹국엔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며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적절한 역할을 두고 한국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고 짚었다.
NDS가 발표된 직후인 25일 사실상 이를 설계한 엘브리지 콜비 미 전쟁부 정책차관이 방한한 것도 NDS에 대한 입장을 공유하는 한편 한국이나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 보다 명확한 선을 그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 정책·전략 분야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는 콜비 차관은 한국의 주요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을 만난 뒤 27일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