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선언 여진 속에서도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예정됐던 현장 최고위를 앞두고 하루 일찍 제주에 내려가 제주 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솔포럼’의 비전 선포식에 참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시절부터 정청래 대표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모임”(고경희 포럼 공동 대표)이라는 청솔포럼은 정 대표의 팬클럽 성격이다. 정 대표는 지지자들과 반갑게 인사한 뒤 ‘이재명 정부 성공을 위한 시민의 역사적 책무’를 주제로 강연했다.
“독단적 추진”이라며 정 대표의 합당 추진 방식을 문제 삼는 당내 반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정 대표는 나머지 당무를 예정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숙원 사업인 대의원·당원 1인1표제 재추진에 거듭 힘을 싣고 있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22~24일 실시한) 권리당원 온라인 의견 수렴 결과 당원들의 압도적 찬성 여론이 확인됐다”며 “내달 2일 개최되는 당 중앙위원회 의결을 통해 당헌 개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 대표의 전당대회 공약인 1인1표제는 민주당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현재 17:1에서 1:1로 조정해 당원 영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2월 당 중앙위 표결에서 한 차례 부결됐지만, 당 지도부가 한 달여 만에 다시 절차를 밟고 있다. 조 사무총장은 “온라인 의견 수렴의 참여율도 지난번보다 15%포인트 가까이 증가해 31.64%를 기록했고, 찬성률은 85.3%로 (지난번 86.81%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정 대표의 모습에 당 일각은 날 선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언주·강득구·황명선 최고위원이 정 대표의 합당 선언 방식에 반발해 지난 23일 최고위에 공개 불참했는데도 정 대표가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선 의원은 통화에서 “최고위가 두 동강이 났는데도 이틀 뒤 개인 팬클럽 출범식에 간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며 “자신밖에 모르는 ‘소아적 정치’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위독하다는 보도가 이어지던 시점이라 더욱 부적절하다”라고도 했다.
정 대표는 25일 오후 이 전 총리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현장 최고위를 취소하고 곧바로 상경길에 올랐다. 그래도 합당을 둘러싼 물밑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혁신당이 전날 의총 후 “민주당에서 논의가 정리되고 난 뒤에 저희가 답을 해야 할 것”(조국 대표)이라고 결론내면서 공은 다시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여권에서는 합당으로 의견이 모이더라도 진통이 상당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명부터 지방선거 공천 지분까지 민감한 협상 의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 전망이다. 조 대표는 의총 후 “정치인 조국과 혁신당의 정치적 DNA가 보전은 물론 확대돼야 한다는 원칙에 기반해 (합당을) 논의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민주당에 흡수되는 식의 합당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조 사무총장은 25일 “민주당 70년 역사에는 수많은 정치 세력의 DNA가 다 새겨져 있다”고 화답하면서도 “(지방선거 공천에서의) 지분 논의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합당 후 당명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유지돼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의원들 사이에서는 합당으로 요동칠 당내 권력 지형을 주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합당이 성공할 경우, 내년 8월 연임을 노리는 정 대표와 유력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민석 총리 사이에 조국 대표라는 새 변수가 등장하게 된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조 대표가 오자마자 당권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 대표가 지선과 전당대회에서 혁신당 지지층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략통 여권 인사는 “현재 지방선거 판세를 고려할 때 혁신당과의 합당이 꼭 필요하지는 않은데 정 대표의 제안 시점이 너무 급하다”며 “다음 전당대회 전까지 호남의 혁신당원들을 자신의 우군으로 만들려 한다는 시선을 피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조 사무총장은 이와 관련해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조 대표와 함께하자는 것을 (정 대표의) 자기 정치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은 향후 2달간 의원총회, 전국 17개 시도당 토론, 전당원 투표, 중앙위 개최 등을 거쳐 합당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르면 26일 구체적 일정을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