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캐나다·노르웨이 출장을 앞둔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25일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6·25 전쟁 참전 캐나다군 전사자들을 추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이번 출장의 주된 목적인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 수주전에서 70여년 전 함께 피흘린 전우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외교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경쟁국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를 내세우는 것과 무관치 않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강 실장은 이날 오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전쟁기념관 야외 평화의 광장에 설치된 캐나다군 전사자 명비를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캐나다는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중 세 번째로 많은 2만 6000여명을 파병해 516명이 전사했다.
강 실장이 출국 직전 이곳을 찾은 것은 양국 간 안보 협력이 6·25 전쟁 때부터 이어져 왔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나토라는 울타리를 앞세운 독일의 공세를 뚫기 위해 한국과 캐나다는 실제 전장에서 함께 싸운 오래 된 안보 파트너라는 점을 되새기는 셈이다.
한국과 캐나다는 동맹이 아닌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지만, 최근 들어 안보 협력이 더 긴밀해지는 추세다. 양국이 지난해 10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군사·국방 비밀정보보호 협정을 체결한 게 이를 방증한다. 방위산업 분야 협력 고도화의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대규모 방산 사업을 따내려면 양국이 긴밀한 안보 협력 관계라는 점이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 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 캐나다 잠수함 사업은 한화오션의 3000t급 ‘장보고-Ⅲ 배치-Ⅱ’와 독일 TKMS의 2500t급 ‘212CD형’ 간의 2파전이다. 캐나다는 3월 제안서 접수 후 이르면 이르면 상반기 내에 우선협상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원팀 컨소시엄으로 참여하고 있다.
외교 지형만 보면 독일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가 많다. 캐나다는 나토의 일원일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 비(非)유럽연합(EU) 국가 중 처음으로 유럽 무기 공동구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바이 유러피언(Buy European)’ 기조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 정부는 장보고-Ⅲ가 이미 건조돼 실전에서 검증된 상태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다. 초도함 인도가 설계 도면 단계인 독일보다 3년 앞선 2032년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독일과 한국의 잠수함은 사실상 ‘아이폰과 갤럭시’ 정도의 차이로 기술력은 두 나라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관건은 한국이 캐나다에 그 대가로 제공할 수 있는 ‘플러스 알파’가 무엇인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얼마나 완성된 패키지 형태로 이를 제안하느냐가 핵심일 수 있다. 정치권에서 이번 출장에 김정관 장관이 동행하는 점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최대 승부처인 ‘절충 교역(Offset)’ 협상에 속도가 붙을 수 있어서다.
절충 교역이란 외국에서 군수품을 수입할 때 상대국에 기술 이전이나 현지 생산 등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조건부 교역 방식이다. 현재 캐나다는 한국에 현대차 현지 공장 설립을, 독일에는 폭스바겐 추가 시설 건립 등을 추가로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캐나다 현지에서 강 실장이 이끄는 방산 특사단과 만나 관련 일정에 동행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권 안팎에선 민간 차원의 우호 분위기 조성 필요성도 제기된다. 올해 서거 70주년을 맞은 세브란스 병원 설립자 올리버 알 에비슨 박사(캐나다 출신) 추모 행사 개최와 낙후된 현지 묘역 정비 등을 통해 캐나다 국민에게 ‘잊지 않는 한국’을 보여주는 공공외교 강화가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에비슨 박사는 한국에서 서구 의학의 보급에 큰 기여를 했고, 초창기 연세대 발전에도 역할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강화해 한국을 핵심 파트너로 인식시키는 노력이 병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140여년 전 이역만리 조선 땅에 와 근대 교육에 힘쓴 에비슨 박사 등 선교사 4명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더 미션:K’가 오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진행된다. 에비슨 박사 역할은 제국의아이들 출신 김동준이 맡는데, 캐나다 측에서도 이번 공연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