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장 국내 민간병원 첫 양성자 치료 10년간 암 환자 8000여 명 찾아 차세대 기술 ‘플래시’ 연구 박차
방사선 치료는 대표적인 암 치료법 중 하나다. 활로 과녁을 맞히듯 종양(암)에 방사선 빔을 집중해 쏘는 과정이다. ‘얼마나 정확하게 겨냥하느냐’가 치료의 성패를 가른다. 암세포는 확실히 제거하되, 정상 조직의 손상은 최소화해야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차세대 방사선 치료 기술이 ‘입자선 치료’다. 활용하는 입자에 따라 양성자(수소)와 중입자(탄소)로 구분한다. 국내에선 2007년 국립암센터에서 첫 입자선(양성자) 치료가 이뤄졌다.
삼성서울병원은 2015년 말 민간병원 중 처음으로 양성자 치료를 시작했다. 양성자치료센터 개소 후 10년간 8000여 명의 암 환자가 이곳에서 양성자 치료를 받았다. 누적 치료 건수는 약 10만 건. 매년 1000명 안팎의 환자가 정밀한 암 치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 양성자치료센터를 찾는다. 국내 입자선 치료 발전을 이끈 삼성서울병원 박희철 양성자치료센터장(방사선종양학과 교수)에게 지난 10년의 의미와 다음 10년의 방향을 물었다.
Q : 센터 10주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A : “이제야 비로소 다음 10년을 논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운영 기반이 갖춰졌다고 본다. 성과만 보면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초반에는 장비 고장과 운영 불확실성 등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데도 변화를 이끈 점은 확실하다. 삼성서울병원이 양성자 치료를 시작하면서 국내 입자선 치료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 현재 센터는 치료실을 2부제로 운영하며 하루 50건 가까운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수요는 많지만,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Q : 주로 어떤 암종을 치료했나.
A : “간암이 30% 이상으로 가장 많고, 두경부암·폐암·뇌종양·췌담도암이 뒤를 잇는다. 수술이 어렵거나 방사선 치료 난도가 높은 암종을 치료해 왔다. 정밀 치료가 필요한 환자군에서 양성자 치료의 장점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Q : 양성자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뭔가.
A : “기존 방사선 치료는 피부에서 암까지 지나가는 모든 조직에 에너지를 남긴다. 반면에 양성자 치료는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한 에너지가 정상 조직을 거의 그대로 통과하다가 암 조직에 도달하는 순간 집중된 후 소멸한다. 이런 현상을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고 한다. 이 물리적 특성 덕분에 암세포는 효과적으로 파괴하면서도 주변 정상 조직 손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정밀도가 중요한 간암·폐암·두경부암·소아암 치료에서 양성자 치료가 강점을 갖는 이유다.”
Q : 삼성서울병원의 핵심 기술은.
A : “‘라인스캐닝’이 대표적이다. 기존 2차원 양성자 치료는 종양 전체를 한번에 ‘도장 찍듯’ 조사(照射)하는 방식이었다. 라인스캐닝은 가느다란 펜슬 빔으로 종양 윤곽을 따라 선을 그리듯 채워 나간다. 종양 모양에 맞춰 조사할 수 있어 정밀도가 훨씬 높고, 정상 조직 보호에도 유리하다.”
Q : 움직이는 장기에서는 적용하기 어렵지 않나.
A : “스캐닝 방식은 정밀한 대신 호흡에 민감하다. 숨을 쉴 때마다 장기 위치가 바뀌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방사선종양학과가 20여 년간 축적한 호흡동조기술을 결합해 해결했다. 환자의 호흡 주기에 맞춰 빔을 조사하거나 위치 변화를 계산해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식이다. 현재 센터에서 시행되는 양성자 치료의 99%는 이 스캐닝 방식으로 이뤄진다.”
삼성서울병원은 양성자 치료의 임상 근거를 차근차근 쌓아 왔다. 지난 10년간 91편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수술이 불가능한 간암에서 스캐닝 양성자 치료를 통해 국소 종양 제어 효과를 최초로 입증한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이 연구는 2022년 유럽방사선종양학회지(Radiotherapy and Oncology)에 게재됐다.
Q : 또 다른 차세대 기술로 ‘플래시(FLASH)’가 주목받고 있다.
A : “플래시는 방사선에 노출되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개념이다. 초당 40그레이(Gy) 이상의 고선량 방사선을 1초 미만의 짧은 순간에 조사한다. 암 타격 능력은 유지하면서 정상 조직 보호 효과는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면역항암제와 양성자 치료를 병합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플래시 기반 양성자 치료 역시 아직 태동기 단계인 만큼 전임상 연구를 거쳐 초정밀 치료로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아카데믹한 도약을 그리고 있다. 지난 10년이 치료 수용과 운영 안정에 집중한 시기였다면, 이제는 임상 연구를 통해 근거를 만들고 치료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플래시 기술, 면역항암 병합 치료, 양성자와 중입자를 결합한 다중 이온 치료가 그 축이 될 것이다. 치료를 많이 하는 센터를 넘어 학문적 성취로 평가받는 센터가 되고자 한다.”
Q : 양성자 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A : “양성자 치료가 모든 암에 적용되는 만능 치료는 아니다. 다학제 논의를 거쳐 꼭 필요한 환자에게 제공돼야 한다. 환자 접근성을 넓히는 것과 과잉 기대를 부추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지역별로 입자선 치료 인프라가 확충돼야 하고, 상급병원은 임상 연구와 치료 기준 정립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