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둘러싼 소송에서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면서, 금융감독원 제재를 둘러싼 ‘후폭풍’이 예고됐다. 불완전판매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투자자의 책임을 비교적 넓게 인정하면서, 금감원이 은행에 사전 통지한 2조원대 과징금에 대한 법적 부담이 한층 커졌다.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오는 29일 금감원은 홍콩 ELS 불완전판매에 대한 2차 제재심의위원회를 연다. 제재심을 앞두고 금감원과 상충되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금감원이 내린 대규모 과징금에 대한 법적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법 제22민사부는 지난 16일 홍콩 H지수 ELS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가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10억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과거 20년 지수 변동자료 및 수익률 모의실험 미제공만으로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고, 장래 지수 변동에 따른 손익 판단은 원칙적으로 투자자 책임”이라며 은행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홍콩 ELS 불완전판매의 핵심 쟁점으로 ‘설명의무 위반’을 내세워온 금감원의 판단과 결이 다른 대목이다.
홍콩 ELS 사태는 2023년 홍콩 H지수 급락 이후 본격화됐다. 저금리 기조 속 2020년부터 대규모로 판매된 홍콩 H지수 ELS는 총 16조3000억원 규모에 달했고, 이 중 약 4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를 토대로 은행들이 손실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말 KB국민ㆍ신한ㆍ하나ㆍNH농협ㆍSC제일은행 등 5개 은행에 약 2조원 규모의 과징금을 사전 통지했다. 이에 일부 투자피해자들은 은행을 상대로 부당이득 반환 및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이 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금감원 통계에 따르면, 홍콩 H지수 ELS 투자로 손실을 본 가입자 10명 중 9명(91.4%)이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있다. ‘초보 투자자 보호’라는 금감원의 제재 논리가 행정소송 국면에서는 보다 엄격한 검증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정보가 투자자가 쉽게 확인 가능한 자료인 만큼, 이를 확인하는 것은 투자자의 의무라는 의미다.
또 법원이 지수 변동 추이나 수익률 모의실험 제공 의무는 판매사인 은행이 아니라, 발행인(증권사)의 영역이라고 보면서 향후 새로운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설명의무를 은행에만 귀속시키기보다, 상품 구조를 설계한 발행인인 증권사의 책임 범위까지 함께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은 이미 피해자들에게 자체적으로 1조 이상의 자율보상을 했다는 것에 호소하는 분위기다. 이복현 전 금감원장은 지난해 “은행이 소비자 피해 보상을 선제적으로 이행할 경우 제재 절차에서 정상 참작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은행들은 지난해 6월 기준 투자자 96%와 합의했고, 5개 은행이 지급한 배상액은 이미 1조3437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정권 교체 이후 제재 기조가 달라지면서, 은행권에서는 선제적 보상이 결과적으로 재정적 부담만 키운 셈이 됐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당국은 이번 소송 케이스가 ELS 피해자들을 대표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하고 있다. 소송에서 패소한 투자자는 과거 ELS 투자 경험이 13차례에 달하는 고경험 투자자였고, 투자원금이 20억원에 달할 만큼 투자금 규모가 컸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피해자들과 다르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1억원 안팎의 예금을 넣으려다 은행의 권유로 ELS에 투자한 뒤 손실을 본 피해자와는 결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최종 과징금 규모는 제재심과 금융위원회 의결을 거쳐 확정되지만, 역대 최대 수준인 2조원 과징금을 둘러싼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민사 재판에서 소비자가 설명의무 위반을 입증해 승소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제재심을 앞두고 금감원 논리와 반대되는 법원 판단이 먼저 나온 만큼, 금감원으로서도 사전 통보한 수위 그대로 과징금을 확정하는 데 부담이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