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 때 결정됐던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기로 했다.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 급증에 정부의 원전 정책도 탈(脫)원전에서 벗어났지만, 공론화를 빌미로 시간만 허비했다는 비판도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해진 신규 원전 2기의 건설을 계획대로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2.8GW 규모 대형 원전 2기를 2037년, 2038년 각각 도입하고 2035년까지 소형모듈원자로(SMRㆍ0.7GW)를 만든다는 계획이 반영됐다. 정부는 지난해 9월 국민 여론 수렴이 부족했다며 여론조사 등 공론화를 통해 원전 건설 여부를 다시 정하기로 했다.
이번 정부 초기만 해도 원전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뚜렷했다. 기존 원전은 수명을 연장해 쓰기로 했지만,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잇따라 내비쳤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9월 기자회견에서 “원전을 지을 곳이 없고, 지금 지어도 실제 가동까지 1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정부 입장은 원전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김 장관도 이날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중심으로 전력을 운영해야 한다”며 “원전은 기저전원으로서 분명한 역할이 있고, 해외 수출도 적극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해외에서는 원전을 수출하면서 국내에서는 짓지 않겠다는 정책은 다소 궁색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원전 정책 ‘유턴’은 여론의 힘이 컸다. 정부가 한국갤럽과 리얼미터 등을 통해 지난 1월12일~16일 국민 30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 찬성 여론이 69.6%(한국갤럽)까지 나왔다. 원전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89.5%(갤럽)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를 바꾸는 데 대한 부담이 줄었다.
AI 전력 전쟁에 대한 현실적 판단도 깔렸다. AI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은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데다, 24시간 내내 안정적인 전력 공급도 필수다. 기후 등에 따라 전력 공급이 둘쑥날쑥한 재생에너지만으로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김 장관은 “한국은 재생에너지의 주력 전원인 태양광만으로 전력 운영을 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라며 “유럽처럼 전력 원가를 전기료로 다 부담하게 하기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확정하며 한국수력원자력도 부지 공모 등 관련 절차를 시작할 계획이다. 5~6개월 간의 부지 평가ㆍ선정 과정 등을 거친 후 2030년 대 초 건설허가를 획득해 원전 건설에 나서는 게 목표다.
다만 정부가 공론화 절차를 이유로 시간만 허비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측 역시 “공론화를 가장해 정해진 결론을 정당화한 정책 강행”이라는 입장이다. 11차 전기본상 대형 원전 건설 기간은 13년 11개월로, 당장 관련 절차를 시작해도 2037년 완공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다. 다만 정부는 부지 선정과 행정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면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최근에는 신규 원전 부지 신청에 대한 지역 공감대도 높아져 부지 선정이 과거보다 단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현재 수립 중인 12차 전기본에 이번에 확정된 신규 원전 2기 외에 추가 신규 원전을 반영할 지도 관심이다. 정부는 2040년까지 석탄 발전을 중단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 역시 줄여나가기로 했다. 11차 전기본에는 2038년 기준 석탄 발전이 전체 발전설비 용량의 8.3%, LNG 발전이 25.8%를 차지하게 돼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11차 전기본 상의 원전 비중인 35%를 맞추기 위해서도 20개 이상의 신규 원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내 12차 전기본 실무안을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