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손'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주식·채권 투자를 확대하는 대신, 해외 주식 투자를 줄이는 쪽으로 자산 배분을 조정한다.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외환시장의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국내 증시 급등에 따른 기계적 매도(강제 매도) 위험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올해 첫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열어 국민연금기금 포트폴리오 개선안을 심의·의결했다. 기금위 회의가 1월에 개최된 건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통상 2~3월께 첫 회의가 열리는데, 지난해 결산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례적으로 이른 회의가 열린 것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증시의 예상을 넘어선 상승 등에 따른 투자 포트폴리오 조정이 그만큼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올해 기금운용계획상 목표 포트폴리오 변경의 핵심은 해외 투자 비중을 줄이는 대신 국내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당초 기금위가 예고한 올해 말 기준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4.4%다. 하지만 이번에 14.9%로 0.5%포인트(p) 올리기로 했다. 지난해 말 기준 목표 비중과 동일한 수준이다.
원래라면 자산군별 투자허용 범위인 ±5%포인트(전략적 자산배분 ±3%p, 전술적 자산배분 ±2%p)까지 고려해 최대 19.4%까지 국내 주식을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율이 이미 17.9%다. 최근 코스피가 5000선까지 찍은 걸 고려하면, 허용 상한선을 맞추기 위한 강제 매도 압력이 현실화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0.5%p가 상향되면서 국내 주식에서 약 7조원의 추가 투자 '숨통'이 트이게 됐다(지난해 말 기금 규모 추정치 1454조원 기준).
국내 채권 비중도 24.9%로 기존보다 1.2%p 상향했다. 반면 해외 주식은 당초 목표인 38.9%에서 1.7%p 낮춘 37.2%로 조정했다.
이러한 변화엔 환율 압박, 국내 증시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기금위는 "기금 규모 확대에 따른 외환조달 부담과 최근 수요 우위의 외환시장 환경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달러당 원화값은 정부가 꺼내 든 여러 정책에도 1400원대 중후반을 지키고 있고, 변동성도 여전히 큰 편이다. 환헤지 강화 등을 통한 달러 공급 확대는 없었지만, 해외 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를 줄여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던진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환헤지 강화는 이번 기금위에선 논의되지 않았다. 하지만 해외투자 속도를 조절한 게 환헤지보다 외환시장 안정 효과가 훨씬 클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한 기금위는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진 만큼 전략적 자산배분 허용범위(±3%p) 이탈 시 허용범위 내에 있도록 조정하는 '리밸런싱'도 한시적 유예하기로 했다. 리밸런싱이 꾸준히 발생하면 시장에 과도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장에선 이번 국내 투자 비중 확대를 '증시 부양'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김용하 교수는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많이 늘리지 않고, 리밸런싱도 한시적으로 유예한 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조치를 한 것으로 본다"면서 "국내 주식 강제 매도를 피하기 위해 숨을 돌린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수익률과 안정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국민 노후자금을 정책용 실탄으로 끌어 쓴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번 조정은 국민 재산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신호"라며 "국내 주식 비중을 확대하는 방향은 국민연금의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