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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그 맛, 주모는 기억했다

중앙일보

2026.01.26 07:23 2026.01.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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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2’에 ‘술 빚는 윤주모’로 출연한 윤나라씨. 22일 윤주당에서 모주(母酒) 주조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막걸리를 솥에 붓고, 소줏고리를 위에 얹는다. 솥과 소줏고리는 밀가루 반죽으로 밀봉하고, 소줏고리엔 얼음을 부었다. 찬 기운에 응결된 증기가 그릇에 투명한 액체로 모인다. 소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지난 13일 막을 내린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2’ 1화의 한 장면이다. 떨리는 손으로 음식보다 술을 먼저 만들어내던 이 사람, ‘술 빚는 윤주모’ 윤나라(39·사진)씨다. 지난 22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윤주당에서 그를 만났다. 윤주당은 그가 2019년부터 운영하다 ‘흑백요리사 2’ 출연 이후 잠시 쉬고 있는 식당이다. 윤씨는 “한국에 전통주 문화와 그에 걸맞는 음식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첫 라운드에 그는 직접 내린 소주에 밥·반찬을 더해 ‘주모의 한 상’을 내놓았다.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는 “특별한 손맛”이 느껴진다며 고민 없이 ‘생존’ 판정을 내렸다.


Q : ‘주모의 한 상’은 어떻게 준비했나.
A : “소주를 먼저 생각하고 어울리는 음식을 떠올렸다. 찌개와 수육, 봄동 무침과 세 가지 양념장까지 한국식 반상을 준비했다. 내가 하는 건 ‘익숙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던 요리’다. 원래 겨울에는 100일 숙성 발효한 약주를 먹고 봄엔 꽃술을 먹었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고 대량 생산 시스템에 익숙해져서 (현대인들은) 경험해 본 적 없는 맛이 된 거다. 그 맛을 다시 만들어내고 싶다. 그게 미식 아닐까.”

‘윤나라 인생’의 변곡점도 그 ‘경험’에 있었다. 윤주모가 되기 전, 그는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한 후 공연 기획 일을 하고 있었다. “2011년 한 공연을 기획하면서 자희향이란 전통주를 처음 만났다. ‘세상에, 쌀·물·누룩으로만 빚었는데 과실향이 나고 너무 맛있네’ 이러면서 푹 빠졌다. 몇 년 뒤 그 술을 만든 분의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우기로 했다. 그때 서른 살이었다.”

박록담 한국전통주연구소 소장을 만난 윤씨는 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음식디미방』 『산가요록』 등 고(古)조리서를 보며 직접 술을 만들었다. 그렇게 윤나라는 윤주모가 되어갔다. 해방촌에 주막 윤주당을 열고 손님들에게 “주모라고 부르라”고 했다.


Q : ‘술빚는 윤주모’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A : “문헌 속에 등장하는 거의 유일한 직업여성이 주모 아닐까. 한 주막의 사장으로서 (이방인의) 환대도 담당하면서 음식도 하고, 재워주고, 술도 주고, 해장도 책임진다. 나 또한 21세기의 프로페셔널한 주모가 되고 싶다.”

곰팡이와 효모를 모두 가지고 있는 누룩은 그 종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래서 계절을 이용하고 쌀과 물의 비율을 조정하면, 쌀·물·누룩만으로 만들 수 있는 술이 셀 수 없이 많아진다. 윤씨가 이제까지 개발한 술은 총 3종이다. 모두 2024년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문을 연 자신의 양조장에서 만들었다.


Q : ‘흑백요리사 2’ 결승전 주제가 ‘나를 위한 요리’였는데, 올라갔다면 어떤 음식을 내놓았을 건가.
A : “약주를 가져가서 나를 위한 술상을 차렸을 거다. 청국장에 제육볶음, 쌀밥이랑 반찬까지 해서.”


Q : 요리사 업계에선 여성의 비율이 낮다.
A : “출산하면 몸의 호르몬이나 정신력에 변화가 크다. 그래서 (출산을 겪고도 경력을 이어가는) 여성 요리사들의 비율이 낮은 것 같다. 나 역시도 촬영 당시 출산 100일 좀 넘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이금희 조리장님이나 선재스님 등 멋진 선배들이 나와주셔서 용기 내어 이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분에게 전통주와 한식을 소개하고 좋아하게끔 하고 싶다. 윤주당도 (흑백요리사) 열기가 잠잠해지면 다시 운영할 거다.”





최혜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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