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유튜브 나오죠? 의사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보훈병원으로 오십시오. 돈은 많이 못 드립니다. 그러나 의사가 왜 존재하는지를 알게 해드리겠습니다."
지난 14일 진행된 국가보훈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나온 이 발언은 의료계 안팎에서 화제가 됐다. 발언의 주인공은 올해 1월 취임한 윤정로 인천보훈병원장이다. 윤 원장의 호소를 두고 의료계 일각에선 '싼값에 의사를 부리려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 원장은 26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보훈병원 의료진에 힘을 주고,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리고 싶어 손을 들어 발언 기회를 얻었다"고 발언 배경을 밝혔다. 윤 원장은 "병원에서 임금을 많이 받는 만큼 의사는 더 벌어다 줘야 한다"며 "돈을 좇아도 만족은 없다는 뜻에서 후배들에게 '그 끝은 지옥'이라는 설명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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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지킨 유공자 치료하는 병원…자부심 가져야"
국가유공자 등 국가보훈대상자가 무료로 이용하는 보훈병원은 전국에 모두 6곳. 윤 원장이 이끄는 인천보훈병원은 연간 입원 환자 3만5000명, 외래 환자 17만 명을 진료하는 공공의료기관이다.
그러나 민간병원보다 낮은 보수로 의사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천보훈병원의 의사 정원은 25명이나, 호흡기내과·신경외과 등 5명이 결원 상태다. 15개 진료과 중 12개 과가 의사가 1명뿐이라서 의료진의 피로도도 심한 편이다.
윤 원장은 업무보고에서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병원 전임의(펠로) 초청 진료를 활성화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윤 원장은 "(펠로는) 임금이 높지 않기 때문에 공공병원에서 일정 기간 진료하면 병원과 의료진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윤 원장은 22년 넘게 서울 중앙보훈병원에서 근무했다. 2023년 민간병원에서 약 1년간 일하기도 했지만, 보훈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윤 원장은 "인간 대 인간으로 가슴이 저릿하게 느껴지는 환자를 만날 확률은 보훈병원이 훨씬 높다"며 "진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치료 결과가 좋았을 때 환자가 짓는 표정은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환자의 기쁨이 의사에게 전해지는 순간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무료 진료 중심인 보훈병원은 의료진 사이에서 민원과 갈등이 잦은 곳으로 꼽힌다. 윤 원장은 "욕설을 퍼붓는 환자의 말을 10분 넘게 경청했더니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 적이 있다"며 "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면 행복이 옆으로 퍼져나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삶이 의미 있는 삶이라는 걸 보훈병원에서 느꼈다. 다른 병원에서 느끼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윤 원장에게 '의사가 왜 존재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답했다. 윤 원장은 "그렇다고 의사가 무조건 자신을 희생하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실패할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원장은 업무보고 당시 고(故) 하권익 전 서울보훈병원장의 말을 인용해 "보훈병원이 일류여야 나라가 일류가 된다"고 했다. 기자가 의미를 묻자 "시설이나 대우의 문제가 아니라 일에 임하는 정신 자세의 문제"라며 "보훈병원은 나라를 지킨 분들을 치료하는 병원이다.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의료진이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