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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에 떠는 대학들, 낡은 구술시험 회귀했다…AI 역설

중앙일보

2026.01.26 12:00 2026.01.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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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교의 강의실. 최근 학계에서는 인공지능(AI) 가이드라인 마련 등 학교 차원에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가 인공지능(AI)을 이용한 부정행위 사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대는 지난 1일 “교수가 금지한 방식의 AI 활용이 드러나는 경우 학습 윤리 위반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AI 가이드라인’을 제정·배포했지만 속수무책인 실정이다.

26일 서울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0일 자연과학대학 교양과목 ‘지구환경변화’ 기말시험에서 수강생 36명 중 절반가량이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적발돼 기말고사 성적 자체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어 앞서 10월에 치러진 같은 과목 온라인 중간고사에서도 학생들이 시험 문제 외에 다른 화면을 띄워 놓고 시험을 본 사실도 추가로 확인돼 이미 부여된 중간고사 성적까지 모두 취소했다고 한다.

해당 수업을 맡은 A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기말고사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간고사 로그 기록(컴퓨터 사용 기록)도 살펴봤더니 수강생 36명 중 절반가량이 시험 도중에 다른 화면을 띄워 놓고 응시한 것이 발견됐다”면서 “AI로 시험을 본 정황이 의심돼 성적을 모두 취소하고 과제로 대체했다”고 밝혔다. A교수는 “지금 시스템에선 AI를 사용해 시험을 봐도 (확실히) 알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대는 지난해 10월 ‘통계학실험’ 강의 중간고사에서도 30여명의 수강생 가운데 절반가량이 AI를 이용해 문제를 푼 사실이 확인돼 전원 재시험을 치른 일도 있었다.

김지윤 기자
서울대만이 아니다. 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도 학생들의 ‘AI 커닝’ 확산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연세대에선 600여명 규모의 대형강의 ‘자연어 처리(NLP)와 챗GPT’ 중간고사에서 상당수 학생이 AI를 사용해 시험을 치러 0점 처리됐다. 고려대에서도 약 1000명이 듣는 교양과목인 ‘고령사회에 대한 다학제적 이해’ 온라인 중간고사에서 학생들이 강의자료를 AI에 학습시킨 뒤 해당 답변을 오픈채팅방에서 공유한 게 적발돼 시험이 무효 처리됐다

AI 부정행위가 급속도로 확산하자 일부 대학은 과거처럼 자필·구술시험 등 대면시험으로 회귀하는 추세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서 근무 중인 한 이공계열 조교는 “지난 기말고사 때 조교 8명이 300명을 감독하며 손으로 코드를 쓰는 방식으로 시험을 봤더니 과제와 달리 학생 개인의 수준이 명확히 드러났다”며 “다음 학기에도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 서울대 교수는 “다음 학기엔 집에서 볼 수 있는 비대면 시험이나 과제를 최소화하고, 대면으로 치를 예정”이라며 “주변 교수들 일부는 대면 구술시험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에 학생들은 “시대에 역행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대 재학생 강모(24)씨는 “지금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손해”라며 “챗GPT가 나왔을 때부터 부정행위 가능성이 제기됐는데 학교가 넋 놓고 있다가 뒷북만 친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박모씨는 “공대는 사실상 안 쓰는 사람이 없고, 쓰지 말라고 하기도 어렵다”며 “시험과 관련해 사용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뚜렷한 지침을 줘야 한다”고 했다.
신재민 기자

문제는 대학들이 앞다퉈 비대면 및 대형 강의를 늘리면서 AI 부정행위를 잡겠다고 대면시험으로 회귀하는 게 현실적 처방이냐는 점이다. AI 부정행위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인데 대학들이 손 놓고 방치했다는 지적도 교수들 사이에선 나온다.

교육부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서울대에선 2022년 1·2학기 각각 4개, 5개에 불과했던 비대면 수업은 2024년 1학기 55개, 2학기 51개로 늘었다. 연세대는 2022년 2학기 34개에서 2024년 2학기에는 321개로 크게 늘었다. 전체 대학에서 비대면 강의는 2023년 1만9541개(1·2학기 합산)에서 2024년 2만2909개로 1년 새 17%가량 증가한 상태다. 전체 대학에서 수강생 80명이 넘는 대형 강의 역시 2022년 4만4948개에서 2024년 4만7556개로 2608개 늘었다. 비대면 및 대형 강의에서 시험 감독은 허술해질 수밖에 없어 부정행위 적발은 더 힘들다. 실제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실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에게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5년까지 6년간 세 학교에서 발생한 부정행위 총 10건 가운데 7건이 비대면 시험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6월 148개 대학 총장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생성형 AI에 대한 공식적인 학교 정책(AI 가이드라인 등)을 적용하거나 채택한 경우’는 64개교(59.6%)로 절반이 조금 넘었다.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대학들이 비용과 효율성만 앞세워 비대면 강의와 대형 강의를 늘렸지만 여기선 대면이나 수기로 시험을 치르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AI 활용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고, 부정행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AI는 사용해야 하는 게 100% 맞는데, 지금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는 이른바 ‘무법상태’”라며 “과목의 수업 목표에 따라 AI를 활용해 학생들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교수법을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창용.이규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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