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여자컬링에서 ‘팀 킴’이 “영미~”를 외치며 전 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면, 이제 열흘 뒤 개막할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 ‘5G’가 그 뜨거운 열기를 끊김 없이 이어갈 준비를 마쳤다.
2024년부터 3시즌 연속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이들은 5명 모두 경기도청 소속이다. 스킵 김은지(36)의 성을 따 공식 대회에는 ‘팀 김(Team Gim)’으로 출전하지만, 빙판 위에서는 그들의 전매특허 별명인 ‘5G’로 더 통한다. 팀원 5명의 이름과 별명이 모두 ‘지’로 끝나기 때문. 김은지, 김수지(33·세컨드), 김민지(27·서드), 설예지(30·얼터)에, 쌍둥이 설예은(30·리드)은 별명이 ‘예쁘지’ ‘먹방 돼지’다.
이름 속에 담긴 뜻도 남다르다. 김은지·수지·민지는 모두 지혜 지(智)를 쓰고, 설예지도 한글 이름이 ‘예쁘고 지혜롭게’라는 뜻이다. 2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우리 팀 컬러는 ‘예쁘고 지혜롭고 유쾌하게’다. 빙판 위에서 누구보다 냉철하게 길을 찾아내는 지혜에, 특유의 비글미를 한 스푼 더했다”며 인터뷰 내내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기자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넘쳐흐르는 이들의 광대역 텐션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실력은 이미 세계 최정상급이다. 현재 세계랭킹 3위인 이들은 지난해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10전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세계선수권 4위, 범대륙선수권 3위에 오르며 메달권 후보임을 증명했다. 실력만큼이나 화려한 외모 덕에 ‘겨울왕국 실사판’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팬들의 애정 섞인 별명도 재치가 넘친다. 설예지를 두고는 “어떻게 이름도 설레지”라며 감탄하고, 걸그룹 카리나를 닮은 김수지는 연고지인 의정부를 결합해 ‘의정부 칼있냐’라는 강렬한 수식어를 얻었다.
팀의 중심이자 유일하게 올림픽 무대(2014 소치)를 밟았던 맏언니 김은지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아침 8㎞씩 러닝을 거르지 않아 ‘의정부 고라니’라 불린다. 그는 “12년 만에 다시 잡은 올림픽 기회라 정말 간절하다. 모든 행운을 올림픽에 쏟아붓고 싶어 가족들에게 로또도 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고 전했다. 팀 내에서 ‘마미(엄마)’로 통하는 그는 최종 투구의 중압감을 홀로 짊어지면서도 동생들이 위축되지 않게 “걱정 마, 내가 뒤에 있잖아”라고 말하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춘천시청 시절 ‘컬링 천재’로 불리던 김민지의 합류 서사도 드라마틱하다. 한때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컬링을 그만둔 뒤 경찰 시험을 준비했던 그는 2022년 경기도청 서드로 합류하며 다시 스톤을 잡았다. 평소엔 순둥이 같지만 아이스 위에선 매서운 ‘아기 호랑이’ 눈빛으로 샷을 한다. 팀의 분위기 메이커는 끼와 흥이 넘쳐 ‘깨비’라 불리는 설예은이다. 이들은 모두 의정부 송현고 출신 선후배 사이로, 각 세 살씩 터울이 지며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자랑한다.
1년에 300일 이상 함께하며 숙소 생활을 하는 이들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이”라고 입을 모은다. 컬링은 빗자루질처럼 보여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경기당 세 시간 가까이 소요돼 허리와 손목 등에 부상을 달고 사는 고된 종목이다. 그럼에도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갈 정도로 팀워크가 끈끈하다. 2년 전, 미리 경험해 본 코르티나 올림픽 경기장 벽에 “꼭 다시 오자”며 침을 바르고 왔다는 이들은 VR 기기까지 동원해 현지 적응 훈련을 마쳤다.
앞길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상황 해결 능력이 뛰어난 세계 1위 캐나다, 기복 없는 정교함의 스위스(세계선수권 4연패), 그리고 과감한 운영의 스웨덴 등 쟁쟁한 라이벌들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김은지는 “메이저 대회에서 그들을 모두 이겨본 경험이 있다. 이제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올림픽 후 배우 변우석, 정해인과 가수 세븐틴, 셰프 최강록 등을 만나고 싶고, 휴대폰부터 안마의자까지 온갖 광고를 섭렵하고 싶다는 욕심 많은 5G. 다음 달 2일 스위스로 출국해 최종 담금질에 들어가는 이들은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5G 통신처럼 국민 여러분의 가슴이 빵빵 터질 수 있게 시원시원한 경기를 보여드릴게요. 시상대 제일 높은 곳에서 온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세리머니를 선보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