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의 시위 유혈 진압을 놓고 이란에 대한 군사 개입 옵션을 저울질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 미국과 협상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항공모함 등 최신예 전력을 중동에 급파하며 압박 수위를 끌어올린 효과가 나타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동에 큰 함대를 보낸 뒤 상황이 유동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항공모함 링컨함의 투입 결정을 언급하며 "이란 옆에 거대한 함대가 있다. 베네수엘라 때보다 더 크다"고도 강조했다.
악시오스는 "트럼프가 구체적인 군사옵션에 대해 언급하진 않은 채 외교적 해결책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화를 여러 차례 걸어온 걸 보면 그들(이란 정부)이 협상을 원하는 걸 알 수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란과의 협상과 관련해 백악관은 언제든 열려 있다"며 "이란이 접촉을 원한다면 그리고 조건을 알고 있다면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협상 조건이 지난 1년간 여러 차례 이란 측에 전달됐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농축우라늄 전량 반출 ▶장거리 미사일 비축 상한 설정 ▶역내 대리세력 지원 정책 수정 ▶이란 내 독자적 우라늄 농축 금지 등이 조건이다. 악시오스는 "이란이 대화할 용의는 있다고 밝혔지만 제시된 조건을 수용할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대로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은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링컨함을 중동으로 출발시키고 나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적이 있다. 지난 17일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선 미국의 군사작전 규모와 관련한 질문에 “그가(하메네이가) 내린 최고의 결정은 이틀 전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링컨 항모전단이 중동에 도착하며 상황이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같은 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링컨함과 구축함 3척이 현재 중동에 배치돼 있다"고 확인했다. F-15, F-35 등 전투기, 공중급유기, 추가 방공체계도 중동 지역에 투입됐다. 지난해 10월 항공모함 포드함을 카리브해에 보낸 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한 체포 작전에 나섰던 전례가 이란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악시오스는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군사적 선택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린다고 짚었다. 강경파들은 "이란 정권을 처벌하는 등 시위대를 돕기로 약속한 만큼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일각에선 "테헤란 폭격의 실효성이 불확실하므로 이란 정권의 약점을 이용해 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악시오스에 지난해 6월 있었던 이란과 이스라엘 간 '12일 전쟁'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선제 타격하도록 자신이 허용한 게 이란의 이스라엘 기습을 막았다는 논리다.
미국의 군사 행보가 현실화할 경우 이란의 저항이 상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란과 친이란 무장집단들은 이란이 공격을 받으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레자 탈라이-닉 이란 국방부 대변인은 "이란이 미국-시온주의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된다면 우리의 대응은 이전(지난해 6월)보다 더 단호하고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나임 카심은 "트럼프가 하메네이를 협박하는 건 이 지도자를 따르는 수천만 명을 협박하는 것"이라며 "필요한 모든 조치와 대비 태세로 이 협박에 맞서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충돌이 격화하면 순교자 작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란 내에서 반미 정서를 자극하는 기류도 포착됐다. 지난 25일 테헤란 도심 광장에 있는 대형 광고판에는 미국 항공모함이 공격받아 파괴된 그림이 걸렸다. 여기엔 '피에 젖은 성조기'의 형상을 한 이미지와 "바람을 뿌리면 회오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경고성 문구도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