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등 생필품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세금은 회피한 업체들이 대거 조사를 받게 됐다. 국세청은 특히 이들 업체가 가격 인상 명분으로 내세우는 원자재 가격 상승과의 인과관계를 들여다볼 계획이다.
국세청이 시장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생활물가 상승을 주도한 생필품 폭리 탈세 업체 17곳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가격 담합 등 독과점 기업 5곳, 원가를 부풀린 생필품 제조∙유통업체 6곳, 거래 질서를 교란한 먹거리 유통업체 6곳 등이다. 대기업 2곳과 중견기업 2곳이 포함됐다. 이들의 탈세 규모는 약 4000억원으로 일부는 사주 일가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다.
생리대 제조업체 A사도 포함됐다. 이 업체는 제품 고급화를 이유로 가격을 33.9% 인상하면서 판매 총판인 특수관계법인에 판매장려금과 판매수수료를 각각 300억원∙50억원가량 과도하게 지급해 비용을 부풀렸다. 퇴직자 명의로 위장 계열사를 설립하고, 자재 이동 및 포장 등 용역 대가를 지급해 온 사실도 포착됐다. 국세청은 이 같은 방식으로 B사가 탈루한 세금만 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생리대 가격은 이재명 대통령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여러 차례 지적했던 문제다. 이에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조사에 나선 데 이어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 등 3개 업체가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는데 고강도 압박에 이미 몸을 바짝 낮췄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3사는 이르면 1분기부터 1000~2000원대 휴대용 제품과 5000원대 중저가 생리대 제품군을 공급할 계획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문제라면 생리대값만 문제겠냐”며 “문제 개선은 필요하지만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정부 부처가 너무 과도하게 움직이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설탕 등 식품 첨가물을 만드는 대기업 B사도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B사는 담합으로 가격을 올린 뒤 거짓 세금계산서로 이익을 축소했다. 통상 이 업체는 원자재 가격을 가격 인상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는 달랐다. 시세보다 높은 금액으로 원재료를 교차 구매하는 형태로 매입 단가를 부풀렸다.
비용은 늘리고, 이익은 줄이는 전형적인 탈세 수법이다. 그러면서도 이 업체는 미국 현지사무소에 운영비를 과도하게 지급했는데 알고 보니 이 돈은 미국에 체류 중인 사주 자녀의 체류비로 쓰였다.
국세청은 일시 보관, 금융 추적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조사하고 거짓 세금계산서 등 범칙 행위가 적발되면 처벌로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안덕수 국세청 조사국장은 “국민의 삶을 저해하는 반칙과 특권, 불공정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히 대처하고 물가 안정과 서민 경제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