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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먹고 징역 5년? '한외마약 운전' 처벌 강해지는데 기준은 모호, 위험성 인식도 낮아

중앙일보

2026.01.2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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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서울 관악구의 한 도로에서 연말연시 음주·약물운전 특별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마약·약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늘면서 관련 처벌이 강화된다. 필로폰과 같이 위험성이 큰 마약 뿐 아니라, 미량의 마약 성분이 있지만 의존성·중독성이 없는 ‘한외마약(限外麻藥)’이 사용된 감기약 등을 복용하고 사고를 낼 경우에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일선에선 처벌 기준이 모호한데다 ‘한외마약 복용 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낮은 상태에서 처벌만 높였다간 자칫 혼란을 키울 수 있단 지적이 이어진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종각역에선 택시가 인도로 돌진하며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행인 등을 덮쳐 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를 낸 70대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전) 감기약을 먹었고, 사고 당시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직후 진행한 약물 간이검사에서는 모르핀 양성 반응이 나왔고,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 검사 결과 감기약 성분이 나왔다. 가래약으로 많이 쓰이는 ‘디하이드로 코데인’은 모르핀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A씨가 복용한 감기약 성분 중엔 ‘한외마약’이 포함돼 있었다. 법적으로 ‘제한을 받지 않는 마약’이란 뜻이다. 전문의약품에 속해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처방 받은 약을 복용한 뒤 집중력·인지능력 등이 저하된 상태에서 운전하다 적발되거나 사고를 낼 경우 약물운전으로 처벌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집중력·인지능력의 저하’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무슨 약을 얼마나 먹었는지가 아니라, ‘운전자의 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린다. 정상적으로 운전이 곤란한 상태를 객관적·정량적으로 판단할 기준이 없고,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약의 성분이나 양도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아직 한외마약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의료법과 약사법상 의사와 약사는 복약의 부작용을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감기약처럼 흔히 사고 파는 약의 경우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환자가 무심코 듣고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윤흥희 남서울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재활중독상담학과 교수는 “법적으론 설명 의무가 있어도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찰이 약물운전 수사 과정에서 의료진의 주의사항 고지 여부 등을 확인하긴 하지만, 실제 책임 소재를 가리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의료기관에 부작용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만, 의료진도 환자도 위험성 고지 여부를 명확히 다시 떠올리거나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약물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계속 늘고 있고 처벌도 한층 강화될 예정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마약·약물 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2023년 24건에서 지난해 75건으로 늘었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오는 4월부터 약물운전 처벌 수위를 기존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높인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밝혔다.

때문에 일선에선 혼란을 줄이려면 처벌만 강화할 뿐 아니라, 객관적 기준 마련과 한외마약에 대한 인식 제고, 의료진의 설명의무 강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윤 교수는 “약 겉면에 ‘3시간’이나 ‘이틀’ 등 복용 후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운전대를 잡아도 안전한지 눈에 띄게 표시하게 하는 등의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 같은 제도 보완과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지난 13일 경찰청은 대한의사협회·약사회 등에 졸음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약을 처방할 경우 이를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의 운전 가능성 등을 확인할 것을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약물 복용 후 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전단지를 약국에 배포하는 등 4월 강화된 규정이 시행되기 전까지 시민들의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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