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LPGA 투어 상금왕인 홍정민은 겨울이면 포르투갈에 간다. 이베리아반도 남쪽 끝 알가르브의 포르티망에서 5년째 담금질을 하는 그는 “매년 여기 오니 주위에선 포르투갈 국적을 따서 올림픽에 나가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라며 웃었다. 왜 하필 그 먼 포르투갈일까. 그를 지도하는 TY스포츠 임영희 대표는 “영국 골프 선수들이 겨울이면 포르투갈로 가더라. 훈련 여건이 좋고 비용도 합리적이어서 12년째 이곳에 캠프를 차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르티망 인근 라고스의 팔마레스 골프장에서 만난 KPGA 선수 차율겸은 “태국 등과 달리 날씨가 선선해 운동하기 좋고, 코스 변별력도 국내 대회장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포르투갈에는 전훈 선수들을 위한 미니 스프링캠프 투어가 열리는데, 이 나라 이름을 딴 PT 투어다. 남자 투어지만 여자 선수도 원하면 참여할 수 있다. 여기서 홍정민은 레전드다.
그는 남자와 똑같은 티잉 그라운드에서 경기해 2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PT 투어는 규모는 작아도 엘리트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마르코 펜지(PGA 투어)나 아드리안 메롱크(LIV 골프) 등도 여기서 칼을 갈았다. 이런 남자 대회라면 전성기 안니카 소렌스탐이나 미셸 위도 2등을 하기는 어렵다. 박세리는 KPGA 투어에서 4위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전장이 ‘여성 친화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정민의 남자대회 2위 소식을 들은 기자는 믿기 어려워 기사를 쓰지 않았다. 전훈지에서 만난 홍정민은 “세컨드 샷 대부분을 우드로 쳐야 할 정도로 전장이 길었으나 파 세이브에 집중했고, 점수를 줄일 수 있는 짧은 홀들을 공략했다. 반면 남자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좁은 페어웨이에서 고생하고, 무른 그린 탓에 백스핀 컨트롤을 어려워하더라”고 회상했다. 그러니 대충 수긍이 됐다.
코스 조건이 어떠했든, 엘리트 남성들 틈에서 2위를 한 비결은 결국 실력이다. 그는 “샷 자신감이 있었다. 9홀에서 6언더파를 친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훈 중 홍정민은 남자보다 전장이 약간 짧은 티를 써서 4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홍정민은 “동반 남자 선수들은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내 기세에 밀려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웃었다.
국가대표 출신인 홍정민은 점프투어(3부) 시절 3연속 우승과 120홀 연속 노보기 경기를 펼친 대형 유망주였다. 1부 투어에 올라온 후 다소 주춤했지만, 지난해 공동 다승왕(3승)과 상금왕을 휩쓸며 KLPGA 최강자로 우뚝 섰다.
포르투갈 전훈 덕이 크다. 그리고 포르투갈에 오면 더 잘 치는 듯하다. 연습 라운드를 지켜보니 단점이 거의 없었다. 22일 연습라운드에서 무려 11언더파를 쳤다. 그는 “매일 3㎞씩 뛰고, 라운드 중엔 카트 대신 트롤리를 끌며 걷는다. 테니스도 병행해 체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도전 정신은 돈키호테 급이다. 2023년엔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와 유럽여자골프(LET) 병행을 목표로 양 투어 Q스쿨을 모두 치렀다. 상위권 합격이 예상됐으나, 결과는 두 투어 모두 ‘백카운트’를 따진 끝에 턱걸이 합격이었다. 조건부 시드라 뛸 수 있는 대회도 많지 않았다.
그는 “2023년 여름부터 몸이 좋지 않았다. 무리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해 말 아프리카(모로코)까지 Q스쿨을 다녀 탈이 났다”고 털어놨다. 결국 양 투어 병행 계획을 접고 국내로 복귀해야 했다.
올해의 일차 목표는 한국오픈 우승이다. 그는 “2023년 한국오픈 초반 상위권에 올랐다가 몸이 아파 우승을 놓친 기억이 아직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US여자오픈 등 메이저 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검증받고,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