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슥한 저녁, 먹자골목 거리를 걷노라면 여기저기 건배사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종종 건배사를 강요받기도 한다. 유쾌한 자리에서 건배사를 요구하는 호의를 뭐라 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남들이 다하는, 뻔한 건배사는 망설여지고 그렇다고 참신한 새 건배사를 창작할 재주는 없다는 데 있다. 반전이 있다. 최근 들어 그런 스트레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런대로 괜찮은 건배사를 하나 발굴했기 때문이다. 건배사를 외칠 때마다 다들 좋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뿐만 아니다. 이튿날 일부러 문의해 오기도 한다.
내가 발굴한 건배사는 장무상망(長毋相忘)이다. ‘오래오래 서로 잊지 말자’는 뜻으로, 중국 산시성에서 출토된 기와에 새겨진 문구에서 유래했다. 우리에게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의 낙관으로 알려졌다. 나는 고교 시절, 세한도를 주제로 한 ‘고인과의 대화’란 짧은 수필을 국어책에서 읽고 감동받은 바 있다. 알려진 대로 추운 날(세한)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의 기백을 알 수 있다는 게 주제다.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다. 가장 어려울 때 잊지 않고 자신을 섬긴 제자의 의리를 표현한 것이 그림 속의 낙관이 바로 장무상망이다.
지난해 가을, 그 구절을 생각해 내고 장무상망으로 낙관을 만들었다. 전각 전문가에게 부탁해 귀한 흑단 나무로 새겼다. 엄청 공을 들인 것이다. 그날 이후 저서나 편지, 심지어 퀵을 보낼 때도 어김없이 찍어 보냈다. 낙관을 찍을 때나 건배사를 외칠 때마다 귀한 인연들을 잊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사실 잊힌다는 것, 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래서 ‘몽마르트르의 뮤즈’로 불렸던 화가 마리 로랑생은 “죽는 것보다 잊히는 게 더 비극”이라고 했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그녀는 짧은 행복에 버림받고 잊혔던 비극적인 여인이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 다 갔다. 올 한해, 정든 사람들과 오래오래 잊지 않고 지내야겠다. 장무상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