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 열린 국토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우리나라의 자율주행차 기술을 미국·중국과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다. 김 장관은 그러면서 “생각보다 격차가 크다. 지금부터라도 속도전으로 따라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칫하다간 영영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광주시 전역 자율차 200대 투입
무인 자율운행이 최종 목표
데이터 처리, 규제 타파 등 과제
인프라 구축, 시민 홍보도 필요
미·중은 성인, 우리는 초등학생 수준
미·중과의 기술력 차이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으로 자율차 누적 실증거리는 미국 웨이모가 1억 6000만㎞, 중국 바이두는 1억㎞에 달하지만 우리는 관련 기업 전체를 합해도 1300만㎞를 약간 넘을 뿐이다.
누적 투자액도 2024년 말 기준으로 중국의 바이두는 36조원, 미국 웨이모는 16조원이나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율주행 스타트업인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경우 820억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투자와 실증 경험의 차이는 곧바로 기술력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고 돌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는 ‘레벨4’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특정 조건에서만 자율주행이 가능하고, 비상 상황에선 운전자의 개입이 필요한 ‘레벨3’ 단계 부근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일반적으로 ‘레벨0(자율주행 불가)’부터 ‘레벨5(완전 자율주행)’까지로 구분된다. 미국이 100점이라면 우리는 90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국토부가 최근 광주광역시 전역을 자율차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하는 내용의 ‘자율주행 실증도시 추진방안’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국내에서 특정 도시의 일부 구간이 아닌 도시 전체를 24시간 자율차 실증공간으로 지정한 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전국 17개 시·도 내 55개 구역을 자율차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해 운영해 왔다.
이번 실증 사업은 600여억원을 투입, 200대의 자율차를 제작해 총 3단계로 나눠서 진행된다. 1단계는 안전관리자가 운전석에 탑승한 상태에서 주행하고, 2단계에선 관리자가 조수석에 타고 운행영역도 확대한다. 마지막 3단계에선 관리자 없는 무인 자율주행으로 복잡한 도심 등 도시 전역을 누비게 된다. “복잡한 도시의 1분 테스트가 그렇지 않은 곳의 1시간만큼 가치가 있다”는 게 국토부 판단이다.
국토부 “업계 의견 대폭 수렴할 것”
국토부는 기술개발에 걸림돌이 돼온 규제도 과감하게 풀겠다는 방침이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선 자율주행이 허용되지 않고, 주행 중 수집한 원본영상 데이터에 담긴 얼굴 등 개인정보는 식별이 안 되게 처리토록 해 AI 학습에 어려움을 주는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임월시 국토부 자율주행정책과장은 “기존과 달리 이번에는 업계 의견을 대거 수렴해 전폭적으로 규제 혁신을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실제 교통 환경에서 대규모 데이터를 축적하고, 내후년까지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4월까지 참여 기업 공모를 마친 뒤 3개 내외의 자율주행 기업을 선정하게 된다. 계획대로라면 8월께 운행이 순차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관련 업계에선 기대감이 적지 않다. 정하욱 라이드플럭스 부대표는 “재정지원과 보험제도 정비, 인프라 구축 등이 계획대로 된다면 기술과 산업경쟁력 제고 측면에서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한 효과를 거두려면 보다 면밀하고 체계적인 준비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성용 중부대 스마트모빌리티공학과 교수는 “실증을 저해하는 규제를 도시 단위로 일괄 해소하고, 실증 성과를 근거로 법령과 고시 개정으로까지 이어지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AI(인공지능)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운전을 결정하는 ‘E2E(End-to-End)’ 자율주행 구현을 위해선 막대한 연산 능력이 필수적”이라며 “정부가 국가 AI 데이터센터 등과 연계해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일수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올해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실증도시의 규모를 키우고 운영 안정성도 높여야 할 것”이라며 “엄밀한 평가를 통해 기술력 있는 기업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율차 갑자기 멈추는 상황 대비를”
광주시 차원의 촘촘한 실증 지원 인프라 구축도 과제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는 “원활한 실증을 위해선 광주시가 참여기업들이 사용할 연구공간, 자율차를 위한 차고지와 충전소, 정비공간 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며 “자율차 한 대당 최소 한두 명 이상 필요한 안전관리 인력 확보 방안도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광주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홍보와 유사시 보상체계 구축도 요구된다. 윤일수 교수는 “자율차와 비자율차가 혼재된 상황에선 오히려 교통사고가 증가할 수 있다”며 “운전자들이 자율차가 갑자기 서행 또는 정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방어운전을 하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과도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노력 역시 중요하다.
대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을 바라는 목소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등에선 대기업이 자율주행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우리도 현대차가 실증용 차량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등 스타트업 지원에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자율주행 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러나 미·중과의 기술격차를 좁히기 위한 흔치 않은 기회가 마련된 만큼 정부와 업계,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가야만 할 것 같다.